2025. 4. 20. 23:09ㆍ카테고리 없음
양자대결 프레임 속 사라지는 정책 논쟁과 유권자의 선택권
"이번 대선은 홍준표냐, 이재명이냐 양자택일 선거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홍준표의 이 발언은 아직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선거 구도를 단순화하려는 의도적 전략이다. 경선 중인 후보가 당내 경쟁자들을 건너뛰고 상대 진영의 유력 주자만을 겨냥하는 모습은 이례적이지만, 홍준표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는 익숙한 장면이다.
홍준표는 '이재명의 나라'를 "반칙과 불공정이 판치는 나라"로 규정하며 포퓰리즘의 종착역은 베네수엘라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재명이 제안한 'K-엔비디아' 정책을 "주식을 국민들에게 공짜로 주겠다"는 발상으로 단순화하며 "빚투성이 나라"를 만들 것이라 비판했다. 반면 '홍준표의 나라'는 "자유와 번영의 선진대국"이라며 자신만이 이재명을 막을 수 있는 적임자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런 양자구도 프레임은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 복잡한 정책 논쟁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명확한 대결 구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위험한 함정을 내포한다. 다양한 후보와 정책 대안들이 사라지고, 두 인물 간의 호불호 대결로 선거가 단순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홍준표가 제시한 정책들을 살펴보면, '성장률 비례 복지'는 경제 성장에 따라 복지 지출을 연동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와 같은 저성장·고물가 시대에 실제 필요한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경제가 침체되면 오히려 복지 수요는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을 간과한 접근이다.
규제 축소와 '전국 규제배제 특별구역' 공약은 보수 진영의 전통적인 경제 정책 노선을 반영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그리고 그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심층적 논의는 빠져 있다. '나토식 핵 공유' 주장 역시 국제 정세와 동맹국과의 관계, 핵 비확산 체제 등 복잡한 외교·안보적 맥락을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
홍준표의 '반(反)이재명 빅텐트' 제안은 정치적 실용주의를 보여준다. "모든 우리 당 후보, 밖의 반이재명 전선에 서 있는 다른 당 출신들, 우리 당에 있다 나간 분들 모두 모아" 연대하자는 제안은 승리를 위해 이념적 순수성보다 실용적 연대를 선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역시 '반이재명'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에 기반한 연대로,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대선은 단순히 두 인물 간의 대결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의 과정이다. '홍준표의 나라'와 '이재명의 나라'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유권자들의 선택지를 지나치게 제한할 위험이 있다. 유권자들은 두 인물 중 누가 더 나은가를 넘어, 어떤 정책과 비전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홍준표의 직설적 화법과 공격적 정치 스타일은 그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는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만큼이나 자신의 구체적인 정책과 국가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이재명'이 아닌 '친홍준표'가 될 만한 긍정적 이유를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때, 그의 '양자택일' 프레임은 더 큰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선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여야 모두 경선 과정에 있고, 제3지대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이른 양자구도 프레임은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정책 논쟁을 빈약하게 만들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와 대안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홍준표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나라인지에 대한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