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홈플러스 사태가 보여주는 '금융 민주주의'의 부재

2025. 3. 29. 02:13카테고리 없음

대주주는 이익만 챙기고 손실은 국민에게 떠넘기는 자본의 이중성



28일, 쌀쌀한 봄바람을 맞으며 서울회생법원 앞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절망이 교차했다. 홈플러스 유동화전단채(ABSTB) 피해자들이다. 이들이 들고 있는 손글씨 탄원서에는 평생 모은 노후자금, 자녀 결혼자금, 주택구매자금이 하루아침에 묶여버린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금융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홈플러스 사태의 본질은 단순하다. 대형 유통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유동화전단채에 투자한 일반 국민들이 회사의 경영 실패로 피해를 입었는데, 정작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표현대로 "자기 뼈가 아닌 남의 뼈를 깎고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21일 '상거래채권 전액 변제'를 약속했지만, 이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채무자회생법상 '상거래채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회생계획 내에서의 변제는 결국 장기 분할 상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 전날인 20일 카드 3사와의 만남에서 '사재출연 없다', '우선변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당국과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사태는 우리 사회의 금융 구조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형 자본은 이익이 날 때는 독점하고, 손실이 발생하면 일반 국민에게 전가한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오래된 공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행태다. 김병주 회장(지분 17%)과 김광일 부회장(지분 24.8%)은 사재출연 등 자구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그들은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는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근본 원칙인 '위험과 수익의 비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금융 민주주의란 금융 시스템이 소수 엘리트가 아닌 모든 시민에게 공정하게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 사회의 금융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일반 투자자들은 정보의 비대칭성, 법적 보호 장치의 미비 등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에 대한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하면서 협력업체, 소비자, 근로자와의 약속이행은 포괄허가로 즉시 지급이 가능하도록 허용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유동화전단채 투자자들은 이러한 보호에서 제외되었다. 이들도 실질적으로는 홈플러스의 물품 구매를 위한 자금을 제공한 '협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피해자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선다. 평생 모은 자산이 하루아침에 묶여버린 상황에서 그들은 미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다. 노후 생활, 자녀 교육, 주택 구입 등 인생의 중요한 계획들이 무너진 것이다.

이 사태의 해결책은 명확하다. 홈플러스의 대주주들이 책임 있는 자세로 사재출연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또한 회생법원은 유동화전단채를 물품 대금 지급을 위한 상거래자금으로 인정하여 포괄허가 대상에 포함시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금융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해결책이다.

더 나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대주주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금융 상품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 교육을 강화하여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홈플러스 유동화전단채 피해자들의 손글씨 탄원서에는 우리 사회의 금융 민주주의를 향한 간절한 외침이 담겨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단지 공정한 대우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지만, 그 위험이 불공정하게 분배되어서는 안 된다. 대주주는 이익만 챙기고 손실은 국민에게 떠넘기는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금융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모든 경제 주체가 공정한 규칙 아래 활동하고, 위험과 수익이 비례하며,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된다. 홈플러스 사태가 우리 사회의 금융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쌀쌀한 봄바람을 맞으며 서울회생법원 앞에 모인 피해자들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