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이 던진 질문, 숲에서 답을 찾다

2025. 3. 29. 13:34카테고리 없음

특별기획, 산불 재난과 산림 정책의 충돌


2025년 3월, 대한민국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 재난에 직면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서울시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3만 3천 헥타르를 초토화하며, 인명 피해와 문화재 소실, 주민 대피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재난은 단순히 기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산림 정책과 관리 체계가 만든 인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본보는 이번 경북 산불을 계기로 산불의 원인과 대책, 특히 소나무 중심의 산림 정책과 활엽수의 역할에 주목하며 특별 연재 기획 '산불 재난과 산림 정책의 충돌'을 시작한다. 10부작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대형 산불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숲 관리 방안을 모색한다.

연재 구성

◇1부: 의성 산불, 재난의 전말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된 의성 산불은 어떻게 발생했으며, 왜 이렇게까지 확산되었는가? 초기 대응 실패와 기후 조건, 그리고 소나무 중심 산림 구조의 문제를 짚어본다.

◇2부: 소나무 중심 조림 정책의 유산  
70년대부터 시작된 소나무 중심 녹화사업은 어떻게 오늘날 대형 산불을 부추기는 구조적 원인이 되었는가? 과거 성공으로 평가받던 정책의 역설을 살펴본다.

◇3부: 활엽수, 자연이 준 방패막  
활엽수는 왜 화재 저항력이 높은가? 자연 상태로 유지된 혼효림과 국립공원이 대형 산불 피해를 막아낸 사례를 통해 활엽수림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4부: 숲가꾸기 사업의 허와 실  
산림청이 추진해온 숲가꾸기 사업은 왜 비판받고 있는가? 건조한 숲을 만들고 화재 위험을 높이는 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5부: 헬기와 진화 차량, 예산 낭비인가?  
매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헬기와 진화 차량은 실제로 효과적인가? 강풍과 고온에서 무력한 장비 중심 대책의 한계를 짚는다.

◇6부: 국립공원과 자연 숲이 주는 교훈  
국립공원처럼 자연 상태로 유지된 숲에서는 왜 대형 산불이 발생하지 않는가? 자연스러운 숲 관리가 주는 교훈을 살펴본다.

◇7부: 방화수와 수종 변화  
굴참나무와 은행나무 등 방화수로 알려진 나무들은 왜 화재에 강한가? 수종 변화와 혼효림 조성이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를 탐구한다.

◇8부: 해외 사례에서 배우다  
일본과 미국 등 해외에서 시행 중인 산불 예방 및 대응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본다.

◇9부: 기후위기가 아닌 정책 실패  
반복되는 대형 산불 문제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정책 실패라는 주장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안한다.

◇10부: 지속 가능한 숲 관리로 나아가기  
대형 산불 재난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연 그대로의 숲 발달을 허용하고, 국민 안전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이번 연재는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본보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대형 재난을 막기 위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논의하고자 한다.

[0부: 경북 산불, 재난의 전말]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경북 산불의 교훈
재발화가 말해주는 산림 관리의 민낯

3월 29일 현재, 150시간의 사투 끝에 '진화 완료'를 선언했지만, 경북 산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동과 의성에서 밤사이 재발화된 불길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주불 진화'라는 안도의 한숨 뒤에 숨겨진 위험, 그리고 우리 산림 관리 체계의 민낯을 들여다볼 때다.

재발화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소나무 중심의 단일림 구조, 부실한 잔불 정리, 그리고 '보여주기식' 산불 대응 정책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산불 진화의 진짜 어려움은 화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 아래 숨어있는 불씨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산불 대응 체계는 여전히 '주불 진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동 남후면 고하리 일대에서 발생한 재발화는 단순한 '잔불'이 아니었다. 화선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상당한 규모였으며, 중앙고속도로 통행까지 차단해야 할 정도였다. 의성 신평면과 사곡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잔불 정리'라는 표현으로 축소할 수 없는, 엄연한 '재발화'였다.

문제는 이러한 재발화가 예견된 일이라는 점이다. 소나무 단일림은 지표면 아래 뿌리와 부식층에서 불씨가 오래 살아남는 특성이 있다. 특히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예보된 상황에서 재발화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그럼에도 산림 당국은 충분한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철저한 잔불 정리를 하지 않았다.

"등짐펌프를 지고 산에 올라가서 연기가 나면 끄고 다시 또 연기가 나면 또 끄는 상황"이라는 의성군 관계자의 말은 우리 산불 대응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산불 진화는 마라톤과 같아서, 마지막 1km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단거리 달리기 선수의 마인드로 산불에 대응하고 있다.

재발화 문제는 방화수와 혼효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참나무류와 같은 활엽수는 소나무에 비해 재발화 위험이 현저히 낮다. 활엽수는 수분 함량이 높고, 지표면 아래로 불이 파고들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설사 지상부가 타더라도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를 내는 '맹아 갱신' 능력이 있어 빠르게 회복된다.

산림청이 최근 활엽수 조림 비율을 50%로 높이기로 한 결정은 늦었지만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대책일 뿐, 당장의 재발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잔불 정리와 모니터링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소나무림이 밀집한 지역은 산불 진화 후에도 최소 일주일 이상 집중적인 감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해외 산불 선진국들은 '완전 진화(full containment)'와 '통제(control)'를 명확히 구분한다. '통제'는 주불이 잡혔다는 의미일 뿐, '완전 진화'는 모든 잔불까지 완전히 제거된 상태를 의미한다. 미국 산림청은 대형 산불의 경우 '통제' 선언 후에도 최소 2주간 집중 모니터링을 실시하며, 필요시 '핫샷 크루(Hotshot Crew)'라 불리는 전문 잔불 정리팀을 투입한다.

우리도 이제 '주불 진화'와 '완전 진화'를 구분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화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산불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지표면 아래 숨어있는 불씨는 언제든 바람을 타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소나무림이 밀집한 지역은 더욱 그러하다.

경북 산불의 재발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그것은 산불 대응이 '진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리'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소나무 중심의 산림 구조를 다양한 수종의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화수와 혼효림은 단순히 산불 확산을 막는 것을 넘어, 재발화 위험까지 줄이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속담은 산불 관리에서 더욱 절실한 교훈이다. 화려한 헬기 진화 장면에 안도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불씨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철저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재발화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산림 구조의 변화가 시급하다. 경북 산불의 재발화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1부: 의성 산불, 재난의 전말]
불길 속에 갇힌 의성, 48시간의 악몽
역대 최대 산불, 소나무 단일림과 초기대응 실패가 부른 참사

지난 2023년 3월 초,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난으로 기록됐다. 단 이틀 만에 서울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3만 3천 헥타르의 산림을 집어삼킨 이 대형 참사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초기 대응 실패, 극단적 기후 조건, 그리고 소나무 위주의 산림 구조가 만들어낸 '완벽한 재난'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작은 불씨가 대재앙으로

의성 산불은 3월 2일 오후 2시경 한 농부가 논두렁에 피운 불씨에서 시작됐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초기 진화에 실패했고, 강풍을 타고 불길은 순식간에 인근 산림으로 번졌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들불 신고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바람을 타고 산으로 번진 상태였죠. 당시 풍속이 초속 10미터를 넘었고, 우리가 가진 장비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초기 진화에 참여했던 김민수 소방대원(42)의 증언이다.

산림청과 소방당국은 초기에 헬기 3대와 소방차 5대만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는 산불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산불 발생 6시간 후에야 대형 헬기가 추가 투입됐지만, 이미 불길은 통제 불능 상태였다.

경북도청 재난안전과 박정훈 과장은 "초기 대응 시스템에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며 "산불 위험도 평가와 초기 대응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가 만든 '불의 폭풍'

의성 산불이 대형 재난으로 번진 데는 극단적 기후 조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산불 발생 전 의성 지역은 42일간 단 한 차례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상대습도는 20% 이하로 떨어졌고, 기온은 평년보다 5도 이상 높았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산불 당시 의성 지역의 건조 지수는 '극도 위험' 수준이었다. 여기에 초속 10미터가 넘는 강풍이 더해져 불길은 시속 10km 이상의 속도로 확산됐다.

"이번 산불은 기후변화가 만든 전형적인 '불의 폭풍' 현상입니다. 극도로 건조한 상태에서 강풍이 불면 불길이 마치 폭풍처럼 번지는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팀 이상현 박사의 설명이다.

◇소나무 단일림, '불에 취약한 산림 구조'의 민낯

의성 산불의 확산을 가속화한 또 다른 주범은 소나무 중심의 산림 구조였다. 의성 지역 산림의 약 70%가 소나무 단일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나무는 수지(樹脂)와 송진 함량이 높아 불에 쉽게 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는 다른 수종에 비해 화재 위험도가 2~3배 높습니다. 특히 단일림으로 조성된 경우 불이 나면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번지게 됩니다." 산림생태학자 정우석 교수(서울대)는 "소나무 단일림은 산불에 취약한 '재난 유발 구조'"라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소나무 숲 아래 쌓인 낙엽과 가지들이다. 이른바 '산림 연료'로 불리는 이 물질들은 건조한 날씨에 쉽게 불이 붙고, 산불의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의성 지역은 최근 몇 년간 제대로 된 숲 가꾸기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산림 연료가 과도하게 쌓여 있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적절한 산림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소나무 단일림을 활엽수와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

의성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망 3명, 부상 28명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고령자들로, 대피 과정에서 연기 흡입과 화상으로 피해를 입었다. 또한 주택 157채가 전소되고, 농경지 1,200헥타르가 피해를 입었다. 재산 피해액은 약 3,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의성군 금성면 주민 박영호 씨(68)는 "평생 일구어온 집과 농장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됐다"며 "산불 경보가 너무 늦게 울려 대피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반복되는 재난, 근본적 해결책은

의성 산불은 한국 산림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소나무 중심의 산림 구조를 다양한 수종으로 바꾸고, 산불에 강한 활엽수림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은 "70년대 녹화사업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오늘날 산불 재난의 원인이 됐다"며 "소나무 단일림을 활엽수와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초기 대응 시스템의 개선도 시급하다. 산불 위험도 평가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산불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인력과 장비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성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잘못된 산림 정책과 기후변화, 그리고 부실한 대응 체계가 만들어낸 복합적 재난이다. 이번 참사를 교훈 삼아 산림 관리와 재난 대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의성 산불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2부: 소나무 중심 조림 정책의 유산]
푸른 산의 역설: 소나무 녹화사업, 산불의 온상이 되다
50년 전 '성공 신화'가 오늘날 대형 산불의 구조적 원인으로

한국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오랫동안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시작된 대규모 녹화사업은 세계적 성공 사례로 꼽히며 황폐했던 국토를 푸른 숲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성공 신화'는 대형 산불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소나무 중심의 단일림 조성이 어떻게 오늘날 산불 재난의 구조적 원인이 됐는지 살펴봤다.

◇민둥산에서 푸른 숲으로: 녹화사업의 성공

1960년대 한국의 산림 피복률은 35%에 불과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토의 대부분이 민둥산으로 변했고, 매년 홍수와 산사태가 반복됐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산림 복구에 나섰다.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였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민둥산을 녹화하기 위해 성장이 빠르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를 주로 심었죠." 산림청 출신 김영수 전 국장(75)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1973년부터 1987년까지 약 200만 헥타르에 걸쳐 조림사업이 진행됐고, 그중 소나무는 전체 조림 면적의 약 60%를 차지했다. 이 기간 동안 약 12억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으며, 산림 피복률은 현재 63%까지 높아졌다.

"한국의 녹화사업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 사례입니다. UN은 이를 '한국의 기적'이라 부르며 개발도상국의 모델로 제시하기도 했죠." 국제산림연구기관 한국지부 박민철 대표의 설명이다.

◇소나무의 두 얼굴: 산불에 취약한 구조

그러나 소나무 중심의 녹화사업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소나무는 본질적으로 화재에 취약한 수종이다. 송진과 수지 함량이 높아 불이 쉽게 붙고, 수관(樹冠)이 서로 맞닿아 있어 불이 빠르게 번진다.

"소나무는 화재 발생 시 '토치(torch)'처럼 타오르는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건조한 날씨에는 불이 수관으로 옮겨붙어 '수관화'가 발생하는데, 이는 진화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산불연구센터 정해원 박사의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소나무 단일림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같은 수종이 밀집해 있으면 병충해에 취약할 뿐 아니라, 산불이 발생했을 때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발생한 대형 산불의 90% 이상이 소나무림이 밀집한 지역에서 일어났다.

"소나무 숲은 마치 휘발유를 뿌려놓은 것과 같습니다.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죠. 특히 50년 이상 된 노령림은 하층 식생이 빈약해 산불 확산을 막을 장벽이 없습니다." 산림생태학자 이준호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산림 관리의 실패: 방치된 숲

소나무림의 취약성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부실한 산림 관리였다. 녹화사업 이후 적절한 간벌과 숲 가꾸기가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산림이 과밀 상태로 방치됐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산림의 약 40%가 적정 밀도를 초과한 과밀 상태다.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게 자라면 서로 영양분과 햇빛을 두고 경쟁하게 되고, 이는 전체적인 산림 건강성 저하로 이어진다.

"산림 관리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나무를 심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이후 수십 년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를 심는 데만 집중하고 관리는 소홀히 했죠." 산림정책연구원 최병철 원장의 지적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소나무림 아래 쌓인 낙엽과 고사목이다. 이들은 산불 발생 시 '연료'로 작용해 화재 강도를 높인다. 산림청의 숲 가꾸기 사업이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전체 산림의 일부만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산림 관리 예산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산불 진화 장비에는 돈을 쓰면서 정작 산불을 예방할 수 있는 숲 관리에는 투자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산림노동자협회 김태환 대표의 비판이다.

◇기후변화와 맞물린 위험

소나무림의 취약성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고온 건조한 날씨는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소나무의 생육 환경을 악화시킨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한국의 평균 기온은 1.5도 상승했으며, 봄철 강수량은 10% 감소했다. 이는 산불 위험도를 크게 높이는 조건이다.

"소나무는 원래 추운 기후에 적응한 수종입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병충해에 취약해지고, 건강성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산불이 발생하면 통제하기 더욱 어려워집니다." 기후변화산림연구소 박지현 소장의 설명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다양성이 답이다

전문가들은 소나무 중심의 산림 구조를 다양한 수종으로 바꾸는 '산림 다양성 확보'가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활엽수와 소나무가 섞인 혼효림은 산불 확산 속도를 늦추고, 생태적으로도 더 건강하다.

"활엽수는 수분 함량이 높고 불에 잘 타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소나무림 사이에 활엽수 벨트를 조성하면 산불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죠." 산림생태복원센터 이민영 센터장의 제안이다.

산림청도 최근 '제7차 산림기본계획'을 통해 소나무 단일림을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과제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산림 구조를 바꾸는 것은 최소 30년 이상 걸리는 일입니다. 당장의 산불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숲 가꾸기와 연료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수종 다양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산림청 산림보호과 정민호 과장의 설명이다.

◇과거의 성공, 미래의 교훈

한국의 녹화사업은 분명 세계적인 성공 사례였다. 그러나 그 성공이 오늘날 대형 산불의 구조적 원인이 되었다는 역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계의 균형과 다양성을 고려한 산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녹화사업의 성공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죠.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입니다. 산림을 단순히 '녹색 자원'이 아닌 '생태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산림정책학자 오창민 교수(서울대)의 말이다.

소나무 중심의 녹화사업이 남긴 유산은 양면성을 지닌다. 푸른 산을 되찾았다는 성취와 함께, 산불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부작용이 공존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서 배우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산림 관리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3부: 활엽수, 자연이 준 방패막]
불길을 막아선 자연의 방패, 활엽수림
의성 산불에서 살아남은 숲이 들려주는 교훈

대형 산불이 휩쓸고 간 의성 지역에서 유독 눈에 띄는 광경이 있었다. 소나무림은 검게 타 사라졌지만, 활엽수가 우거진 구역은 마치 섬처럼 불길을 견뎌낸 것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활엽수는 천연의 방화벽 역할을 하며 산불 확산을 막는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갖고 있다. 의성 산불 현장에서 발견된 '살아남은 숲'의 비밀을 통해 활엽수림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불에 저항하는 활엽수의 비밀

활엽수가 산불에 강한 이유는 그 생물학적 특성에 있다. 참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같은 활엽수는 소나무와 달리 수분 함량이 높고, 불에 잘 타는 송진이나 수지를 거의 함유하지 않는다.

"활엽수는 평균적으로 소나무보다 2~3배 많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물을 머금은 스펀지와 같아서, 불이 쉽게 번지지 못하게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팀 김지원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활엽수림은 침엽수림에 비해 화재 확산 속도가 최대 80%까지 느리다. 또한 활엽수는 낙엽이 빠르게 분해되어 지표면에 쌓이는 가연성 물질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소나무 낙엽은 분해되는 데 3~5년이 걸리지만, 활엽수 낙엽은 1~2년 내에 분해됩니다. 이는 산불의 '연료'가 되는 물질이 적게 쌓인다는 의미죠." 산림생태학자 이현주 교수(경북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의성 산불에서 살아남은 '녹색 섬'

의성 산불 현장 조사 결과, 불길이 지나간 지역 중 활엽수림이 우세한 구역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의성군 금성면 일대의 '녹색 섬' 현상이다.

금성면 산 182번지 일대는 20년 전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성한 혼효림 지역이다. 이곳은 소나무와 참나무, 단풍나무가 7:3의 비율로 혼재해 있었는데, 산불이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약 70%의 나무가 살아남았다.

"처음에는 이 지역도 다 타버렸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조사해보니 활엽수들이 대부분 살아있었고, 이 나무들이 마치 방화벽처럼 작용해 뒤쪽 숲까지 보호한 겁니다." 산불 피해 조사에 참여한 산림청 김동현 연구관의 말이다.

금성면 주민 박영호 씨(72)는 "20년 전 마을 어르신들이 '소나무만 심으면 언젠가 큰 화재가 날 것'이라며 참나무를 심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지혜를 실감했죠"라고 회상했다.

◇국립공원의 교훈: 자연 그대로의 힘

활엽수의 방화 효과는 국립공원에서도 확인된다. 지리산과 설악산 등 국립공원은 인위적인 조림보다 자연 상태의 혼효림이 많아 대형 산불 발생률이 현저히 낮다.

국립공원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국립공원 내에서 발생한 산불 중 100헥타르 이상 대형 산불은 단 2건에 불과하다. 이는 같은 기간 일반 산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87건)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국립공원은 자연 천이에 따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특히 계곡부와 북사면은 활엽수 비율이 높아 자연적인 방화선 역할을 합니다." 국립공원공단 산림보전부 정민석 부장의 설명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 2000년 발생한 산불이 공원 경계에서 멈춘 사례가 있다. 당시 소나무 조림지에서 시작된 불은 국립공원 경계에 있던 활엽수림 지대를 만나 더 이상 확산되지 못했다.

"자연 상태의 숲은 스스로 산불에 대한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이 적을수록 숲은 더 건강하고 재난에 강해집니다." 국립공원연구원 생태복원팀 박지영 팀장의 말이다.

◇방화수(防火樹)의 전략적 활용

활엽수 중에서도 특히 산불 저항성이 높은 수종을 '방화수'라 부른다.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단풍나무, 느티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산림청은 최근 '산불 방지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주요 산불 위험지역에 방화수림대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소나무림 사이에 띠 형태로 활엽수를 심어 산불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전략이다.

"방화수림대는 산불 확산을 막는 '그린 방화벽' 역할을 합니다. 특히 마을과 산림 경계, 주요 도로변, 등산로 주변에 조성하면 효과가 큽니다." 산림청 산불방지과 이정훈 과장의 설명이다.

경북 영덕군은 2019년 대형 산불 이후 마을 주변에 100m 폭의 방화수림대를 조성했다. 그 결과 올해 발생한 소규모 산불이 마을로 번지지 않고 방화수림대에서 저절로 꺼지는 효과를 거뒀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왜 소나무를 베고 다른 나무를 심느냐'며 반대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방화수림대가 불을 막아내는 것을 보고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죠." 영덕군 산림녹지과 박성민 팀장의 말이다.

◇숲의 다양성이 주는 회복력

활엽수의 가치는 단순히 산불 저항성에만 있지 않다.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혼효림은 생태적 다양성과 회복력이 높아 산불 이후 복원 속도도 빠르다.

의성 산불 피해 지역 중 혼효림 구역은 이미 새싹이 돋아나는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소나무 단일림 지역은 완전히 타 버려 자연 복원에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활엽수는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를 내는 맹아 갱신 능력이 있어, 지상부가 타더라도 빠르게 회복됩니다. 소나무는 한번 타면 완전히 죽지만, 참나무류는 불에 타도 다시 살아나죠." 산림복원 전문가 최재원 박사(한국산림복원학회)의 설명이다.

또한 활엽수림은 토양 침식 방지, 수자원 보호, 생물다양성 증진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산불 이후 2차 피해를 줄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불 이후 가장 큰 문제는 토사 유출과 수질 오염입니다. 활엽수림은 뿌리 시스템이 발달해 있어 산불 이후에도 토양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죠." 환경생태학자 김태형 교수(서울시립대)의 말이다.

◇정책의 변화: 활엽수의 재발견

의성 산불을 계기로 산림 정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산림청은 최근 '제7차 산림기본계획'을 수정해 활엽수 조림 비율을 기존 30%에서 50%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과거에는 경제성과 성장 속도를 중시해 침엽수 위주로 조림했지만, 이제는 산림의 공익적 기능과 재해 저항성을 고려한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산림청 조림정책과 박민수 과장의 설명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산불 위험지도'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조림 정책이다.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은 활엽수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고, 마을과 인접한 지역에는 방화수림대를 의무적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단기간에 모든 산림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부터 활엽수 비율을 높여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산림정책연구원 이상민 원장의 제안이다.

◇자연의 지혜를 배우다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자연의 다양성과 균형이 재난에 대한 최선의 방어책이라는 사실이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단일 수종의 숲보다,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 상태의 숲이 산불에 더 강하다는 역설적 진실을 확인한 것이다.

"자연은 수천 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왔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지혜를 배우고 자연의 회복력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생태철학자 정용재 교수(이화여대)의 말이다.

활엽수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산불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자연의 방패다. 의성 산불에서 살아남은 '녹색 섬'은 우리에게 미래 산림 관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소나무의 푸른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진 건강한 숲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자 안전한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부: 숲가꾸기 사업의 허와 실]
숲가꾸기의 역설: 산불 위험 키우는 '잘못된 관리'
"나무 베고 낙엽 치우는 사업이 오히려 산불 키운다"

매년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산림청의 '숲가꾸기' 사업이 오히려 산불 위험을 높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의성 산불 이후 전문가들은 지나친 간벌과 낙엽층 제거가 숲을 건조하게 만들어 화재에 취약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지적한다. 산림 건강성 증진을 위해 시작된 숲가꾸기 사업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살펴봤다.

◇'건강한 숲'을 위한 사업, 그러나...

산림청이 추진하는 숲가꾸기 사업은 1998년부터 본격화됐다.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자라면 영양분과 햇빛을 두고 경쟁하게 되어 전체적인 산림 건강성이 저하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간벌(間伐·나무 사이를 솎아내는 작업)과 어린나무 가꾸기, 덩굴 제거, 하층 식생 정리 등을 통해 '건강한 숲'을 만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숲가꾸기는 기본적으로 산림의 생장과 건강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적절한 간벌은 남은 나무들의 생장 공간을 확보해주고, 햇빛이 숲 바닥까지 도달하게 해 다양한 식생이 자랄 수 있게 합니다." 산림청 숲가꾸기 담당 김민호 사무관의 설명이다.

지난 20년간 약 250만 헥타르의 산림에서 숲가꾸기가 진행됐으며, 연간 약 3,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사업의 방식과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과도한 간벌'이 만드는 건조한 숲

숲가꾸기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과도한 간벌'이다. 산림청 지침에 따르면 간벌 시 전체 나무의 30~40%를 제거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보다 많은 50~60%까지 베어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간벌을 너무 많이 하면 숲 내부의 습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나무들이 서로 그늘을 만들어 수분을 유지하는 구조가 파괴되는 거죠. 이는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만듭니다." 산림생태학자 박정호 교수(강원대)의 지적이다.

실제로 의성 산불 피해 지역 중 최근 5년 내 숲가꾸기가 진행된 구역의 피해가 더 심각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간벌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숲은 그렇지 않은 숲보다 산불 확산 속도가 최대 30%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간벌 직후의 숲은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직접 들어와 건조해집니다. 또한 베어낸 나무의 가지와 잎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숲에 방치되면 이것이 산불의 '연료'가 됩니다." 산불연구센터 이진우 연구원의 설명이다.

◇낙엽층 제거의 역효과

숲가꾸기의 또 다른 문제점은 '낙엽층 제거' 작업이다. 산림청은 산불 예방을 위해 등산로와 도로변 주변의 낙엽과 지피물(地被物·땅을 덮고 있는 식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이 오히려 산불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엽층은 숲의 수분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치 스펀지처럼 비가 올 때 물을 머금었다가 건조할 때 서서히 방출하죠. 이 층을 제거하면 토양이 직접 햇빛에 노출되어 빠르게 건조해집니다." 토양생태학자 최동원 박사(국립산림과학원)의 설명이다.

경북 영양군에서 30년간 산림 관리를 해온 김영수 씨(62)는 "예전에는 낙엽층을 그대로 두었는데, 요즘은 '산불 예방'이라며 긁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이후로 작은 불씨가 더 빨리 번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산림청의 연구에 따르면, 적당한 두께의 낙엽층은 토양 수분을 유지해 산불의 강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반면 낙엽층을 완전히 제거한 지역은 지표면 온도가 상승하고 수분 증발이 빨라져 화재에 더 취약해진다.

◇획일적 관리의 문제

숲가꾸기 사업의 또 다른 문제점은 '획일적 관리'다. 지역과 수종,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방식으로 숲가꾸기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소나무림과 활엽수림은 관리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또한 북사면과 남사면, 계곡부와 능선부의 특성도 다르죠. 그런데 현재는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림정책연구소 정민영 소장의 지적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작업 실행 과정에서의 부실한 감독이다. 숲가꾸기 사업은 대부분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체들은 빠르게 작업을 완료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베어낼 나무 선정이나 부산물 처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집니다. 특히 간벌 후 발생하는 가지와 잎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산불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됩니다." 산림노동자협회 박성민 대표의 말이다.

◇예산 집행의 비효율성

숲가꾸기 사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예산 집행의 비효율성이다. 매년 약 3,000억 원이 투입되지만, 그 효과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는 미흡한 실정이다.

"숲가꾸기 예산의 상당 부분이 실제 숲 관리보다 행정 비용과 인건비로 소모됩니다. 또한 작업 후 모니터링과 사후 관리가 부실해 장기적인 효과를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환경경제학자 이태호 교수(서울대)의 분석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적 중심'의 사업 추진이다. 면적과 물량 위주로 성과를 평가하다 보니, 질적인 측면은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숲가꾸기 사업은 '얼마나 많은 면적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건강한 숲을 만들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양적 지표에 치중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산림정책 전문가 김태영 박사(한국임업진흥원)의 지적이다.

◇해외의 산림 관리 사례

반면 해외에서는 산불 위험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산림 관리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미국과 호주 등 산불 위험이 높은 국가들은 '처방화입(prescribed burning)'이라는 방식을 활용한다. 이는 통제된 조건에서 의도적으로 작은 불을 놓아 지표면의 가연물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처방화입은 자연의 순환을 모방한 방식입니다. 작은 불을 통해 과도하게 쌓인 연료를 제거함으로써 대형 산불의 위험을 줄이는 거죠. 물론 이 방식은 철저한 계획과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미국 산림청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준호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근자연적 산림 관리(close-to-nature forestry)'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생태적 과정을 존중하면서 최소한의 개입으로 산림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스위스나 독일의 경우, 다층구조의 혼효림을 조성하고 자연 갱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산림을 관리합니다. 이런 숲은 산불에 강할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도 높습니다." 국제산림연구기관 한국지부 이민영 대표의 말이다.

◇개선 방향: 생태적 접근의 필요성

전문가들은 현재의 숲가꾸기 사업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생태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숲은 단순한 나무의 집합이 아니라 복잡한 생태계입니다. 따라서 숲가꾸기도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생태산림학자 정용호 교수(서울대)의 제안이다.

구체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지역과 수종별 맞춤형 관리 ▲간벌 강도의 조절 ▲낙엽층의 적절한 유지 ▲혼효림 조성 유도 ▲장기적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이 제시되고 있다.

산림청도 최근 이러한 비판을 수용해 숲가꾸기 지침을 개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존의 획일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숲가꾸기로 전환하고 있다"며 "특히 산불 위험지역은 간벌 강도를 낮추고 활엽수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침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산림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산림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일깨웠다. 단기적인 경제성과 편의성보다 장기적인 생태적 건강성과 재해 저항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숲가꾸기는 '가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자연의 복원력을 신뢰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생태계가 스스로 균형을 찾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숲가꾸기입니다." 생태철학자 이지원 교수(이화여대)의 말이다.

산불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숲 관리는 단순히 나무를 베어내고 낙엽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숲 생태계의 복잡한 균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현재의 숲가꾸기 사업이 오히려 산불 위험을 높인다는 역설적 상황은 우리의 산림 관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현장의 목소리: "숲을 알고 가꿔야"

30년간 산림 현장에서 일해온 산림조합 김영철 팀장(58)은 "요즘 숲가꾸기는 마치 공장에서 물건 만들듯 획일적으로 진행됩니다"라며 "각 숲의 특성과 역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관리가 필요한데, 실적에 쫓겨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경북 청송군에서 자체적으로 산림을 관리해온 마을 공동체 '푸른숲지킴이'의 이상호 대표(65)는 "우리 마을은 10년 전부터 산림청 지침보다 간벌 강도를 낮추고, 낙엽층을 적절히 유지하는 방식으로 숲을 관리해왔습니다"라며 "그 결과 지난 의성 산불 때 주변 지역은 모두 탔지만, 우리 마을 뒷산은 피해가 경미했죠"라고 말했다.

◇산림청의 변화 움직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산림청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림청은 최근 '생태 중심 숲가꾸기 지침'을 마련하고,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림청 숲가꾸기 정책과 박진호 과장은 "그동안의 숲가꾸기가 경제림 육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산림의 생태적 건강성과 재해 저항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특히 산불 취약지역은 간벌 강도를 20% 이하로 낮추고, 활엽수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산림청은 숲가꾸기 사업의 품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산림관리 인증제'를 도입하고, 사업 후 5년간 모니터링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시민 참여형 산림 관리의 가능성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시민 참여형 산림 관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가 직접 숲 관리에 참여하면 획일적인 관리를 피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세심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이미 '커뮤니티 포레스트리(community forestry)'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산림 관리에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산림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을 높이고, 지역 특성에 맞는 관리를 가능하게 합니다." 산림정책 전문가 한지원 박사(국제산림연구소)의 설명이다.

서울 관악구의 '관악산 지킴이'처럼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산림 관리에 참여하는 사례가 있다. 이들은 전문가의 지도 아래 적절한 간벌과 식생 관리를 하며, 산불 감시 활동도 병행한다.

"시민들이 숲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직접 관리에 참여하면, 산림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공동의 생태계'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산불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시민산림센터 정미경 대표의 말이다.

◇자연의 지혜를 배우는 산림 관리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산림 관리는 자연의 지혜를 배우고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회복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은 수천 년간의 진화를 통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숲가꾸기 사업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은 단순히 산불 예방의 차원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과제다. 나무를 베어내고 낙엽을 치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숲의 생태적 균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숲가꾸기'의 시작일 것이다.

[5부: 헬기와 진화 차량, 예산 낭비인가?]
하늘에서 물 뿌리는 '쇼'... 산불 진화 장비의 민낯
1조원 투입된 헬기·진화차량, 대형 산불 앞에 '무용지물'
재난을 막기 위한 장비, 그 효과는 어디까지인가?

의성 산불 당시 하늘을 수놓은 진화 헬기들의 모습은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됐다.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장비를 투입했다"며 진화 의지를 강조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3만 3천 헥타르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고, 불길은 닷새가 지나서야 잡혔다. 매년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산불 진화 장비는 왜 대형 산불 앞에서 무력했을까? 본보는 장비 중심 산불 대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짚어봤다.

◇천문학적 예산, 제한적 효과

산림청과 소방청이 산불 진화를 위해 보유한 장비는 상당하다. 산림청은 현재 헬기 48대(임차 포함)와 산불 진화차 555대, 소방청은 헬기 29대와 소방차 7,00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군과 경찰, 지자체 보유 장비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이 장비들을 구매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산림청의 경우 지난 5년간 산불 진화 장비 구매와 유지·보수에 약 5,800억 원을 투입했다. 소방청 역시 같은 기간 약 4,200억 원을 관련 장비에 사용했다. 두 기관을 합치면 5년간 약 1조 원의 예산이 산불 진화 장비에 투입된 셈이다.

"대형 산불 진화용 헬기 한 대 가격이 약 150억 원에 달하고, 연간 유지비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여기에 조종사 인건비와 연료비까지 더하면 실제 운영 비용은 더 커집니다." 항공산업 전문가 김태윤 교수(한국항공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장비들이 실제 대형 산불 진화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의성 산불 당시 산림청과 소방청은 헬기 60여 대와 진화차량 수백 대를 투입했지만, 불길을 잡는 데 닷새가 걸렸다.

"헬기 한 대가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물은 1~2톤에 불과합니다. 대형 산불의 열기는 이 정도 물로는 식히기 어렵죠. 게다가 강풍이 불면 물이 목표 지점에 정확히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전직 산림항공본부 조종사 박민수 씨(52)의 말이다.

◇강풍과 고온에 무력한 장비들

산불 진화 장비의 가장 큰 한계는 기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다. 특히 헬기는 풍속이 초속 15m를 넘으면 비행 자체가 위험해 출동이 제한된다. 또한 야간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비행이 불가능하다.

의성 산불 당시 현장의 풍속은 초속 10~20m에 달했고, 불길이 가장 거세게 번진 시간은 야간이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시기에 헬기는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

"대형 산불은 대부분 강풍과 건조한 날씨가 겹칠 때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서는 헬기 운항이 제한되니, 정작 필요할 때 쓰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산불연구센터 정해원 박사의 지적이다.

지상 장비인 진화차량도 한계가 뚜렷하다. 산불은 대부분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 발생하는데, 이런 곳은 차량 접근이 어렵다. 의성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차량 중 실제로 불길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30% 미만이었다.

"산불 진화차량은 도로가 있는 곳까지만 접근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형 산불은 주로 깊은 산속에서 번지죠. 결국 차량은 마을 보호나 도로변 화재 진압에만 제한적으로 활용됩니다." 소방청 산불대응팀 김준호 팀장의 설명이다.

◇장비 운용의 비효율성

장비의 한계 외에도 운용 체계의 비효율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불 진화 장비는 산림청, 소방청, 군, 경찰, 지자체 등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어 통합 지휘가 어렵다.

의성 산불 당시 현장에 투입된 헬기들은 각기 다른 기관 소속으로, 통합된 지휘 체계 없이 개별적으로 움직였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는 여러 대의 헬기가 중복 투입된 반면, 정작 필요한 곳에는 헬기가 투입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산불 현장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통합된 지휘 체계 없이 각 부대가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전투에서 이길 수 없죠. 산불 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난관리 전문가 이상호 교수(연세대)의 말이다.

또한 장비 유지·보수 체계도 문제다. 산림청 감사 결과, 보유 헬기 중 약 20%가 정비 불량이나 부품 부족으로 즉시 출동이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진화차량도 30% 이상이 10년 이상 된 노후 장비였다.

"장비를 구매하는 데는 돈을 쓰면서, 유지·보수에는 인색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헬기는 정기적인 정비가 생명인데, 예산 부족으로 제때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공정비사 출신 정민우 씨(48)의 지적이다.

◇해외의 산불 대응 전략

반면 산불 선진국들은 장비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미국과 호주는 '산불 관리(fire management)'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며, 진화보다 예방과 통제에 중점을 둔다.

"미국 산림청은 전체 산불 예산의 60% 이상을 예방과 산림 관리에 투입합니다. 특히 '처방화입(prescribed burning)'이라는 방식으로 계획적인 소규모 화재를 통해 연료량을 줄이는 전략을 사용하죠." 미국 산불관리청에서 연수한 박지훈 연구원의 설명이다.

호주는 '산불 위험 지도'를 세밀하게 작성해 위험 지역별 맞춤형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 또한 '산불 행동 계획(Bushfire Action Plan)'을 통해 주민들에게 명확한 대피 지침을 제공한다.

"호주는 '모든 산불을 끌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 하에, 인명과 주요 시설 보호에 집중합니다. 또한 지역사회의 산불 대응 능력을 높이는 데 많은 투자를 하죠." 호주 산불연구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민영 박사의 말이다.

◇예방과 관리에 투자해야

전문가들은 장비 중심의 산불 대책에서 벗어나 예방과 관리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산림 구조 개선과 연료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많은 헬기를 투입해도 소나무 단일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잡기 어렵습니다. 근본적으로 산림 구조를 개선하고, 연료량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말이다.

또한 지역사회의 산불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과 호주는 '지역사회 산불 대응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산불 예방과 초기 대응에 참여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장비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산불 위험을 이해하고,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재난관리 전문가 최병천 교수(고려대)의 제안이다.

◇예산 배분의 재고 필요

현재 산불 관련 예산의 70% 이상이 장비 구매와 유지·보수에 사용되고 있다. 반면 예방과 산림 관리에는 20% 미만의 예산만 배정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예산 배분 구조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화재는 예방이 최선입니다. 산불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장비보다 지속적인 예방과 관리가 더 효과적입니다." 산림청 출신 김영수 전 국장의 말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장비 중심 대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예방과 산림 관리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예산 재배분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보여주기식' 대책에서 벗어나야

의성 산불은 장비 중심의 '보여주기식' 대책으로는 대형 산불을 막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헬기가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장면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실제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산불 진화 헬기의 모습은 TV에 잘 나오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보여주는 상징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미미한 경우가 많죠. 이런 '보여주기식' 대책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예방과 관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정호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산불은 이미 발생한 후에 진화하는 것보다,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화려한 장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보다, 산림 구조 개선과 지역사회의 대응 능력 향상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의성 산불이 남긴 교훈을 되새기며, 실효성 있는 산불 대책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6부: 국립공원과 자연 숲이 주는 교훈]
자연이 만든 방화벽, 국립공원의 비밀
"인간의 개입 적을수록 산불에 강한 숲이 된다"

의성 산불이 맹위를 떨치던 그때, 불길은 인근 소백산국립공원 경계에서 신기하게도 그 기세가 꺾였다. 소나무 단일림으로 가득한 일반 산림은 불길에 휩싸였지만,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진 국립공원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방화벽이 있는 듯 산불을 저지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국립공원과 같이 자연 상태로 유지된 숲에서는 왜 대형 산불이 잘 발생하지 않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 보았다.

◇통계로 보는 국립공원의 산불 저항력

국립공원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한국의 국립공원 내에서 발생한 산불 중 100헥타르 이상 대형 산불은 단 3건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일반 산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87건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국립공원 경계에서 산불이 멈추는 '경계 효과'다. 지난 10년간 국립공원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 중 약 80%가 공원 경계에서 확산이 둔화되거나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공원은 일종의 자연 방화벽 역할을 합니다. 의성 산불 당시에도 소백산국립공원 경계에서 불길이 현저히 약화되는 현상이 관측됐습니다." 국립공원공단 산불관리팀 김민준 팀장의 설명이다.

◇자연 그대로의 숲, 다양성이 만드는 저항력

국립공원이 산불에 강한 첫 번째 이유는 '생물다양성'이다. 국립공원은 인위적인 조림보다 자연 상태의 식생이 우세해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의 경우,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 등 30여 종 이상의 교목이 혼재해 있다. 반면 일반 산림은 소나무가 7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수종이 섞인 숲은 산불에 대한 '생태적 회복력'이 높습니다. 어떤 나무는 불에 약하지만, 어떤 나무는 강하죠. 이런 다양성이 전체 숲의 저항력을 높입니다." 산림생태학자 정우석 교수(서울대)의 설명이다.

특히 활엽수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중요하다. 국립공원의 활엽수 비율은 평균 60% 이상인 반면, 일반 산림은 30% 내외다. 활엽수는 수분 함량이 높고 불에 잘 타지 않는 특성이 있어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

"활엽수는 '자연의 소화기'와 같습니다. 특히 참나무류는 두꺼운 수피와 높은 수분 함량으로 불길을 막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지원 박사의 말이다.

◇자연스러운 층위 구조가 만드는 안정성

국립공원 숲의 두 번째 강점은 '자연스러운 층위 구조'다. 자연 상태의 숲은 교목층, 아교목층, 관목층, 초본층 등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구조는 산불이 지표에서 수관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한다.

"인공 조림된 숲은 대개 단층 구조로, 지표화가 쉽게 수관화로 번집니다. 반면 자연 숲은 다층 구조로 되어 있어 불이 위로 번지기 어렵습니다." 지리산국립공원 자원보전과 박성민 과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의성 산불 당시 소나무 단일림에서는 불이 순식간에 수관으로 번져 통제가 불가능했던 반면, 국립공원 경계의 다층 구조 숲에서는 지표화 수준에 머물러 진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자연 숲의 층위 구조는 마치 아파트의 방화벽과 같습니다. 각 층이 불길이 위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죠." 산불연구센터 이진우 연구원의 비유다.

◇자연스러운 수분 순환과 미기후

국립공원 숲의 세 번째 강점은 '자연스러운 수분 순환'이다. 다양한 식생과 층위 구조는 숲 내부의 습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낙엽층이 자연스럽게 쌓여 토양의 수분을 보존한다.

"국립공원 숲 내부의 상대습도는 일반 산림보다 평균 15~20% 높습니다. 이는 산불 발생과 확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죠." 기상학자 김태호 박사(국립기상과학원)의 설명이다.

또한 국립공원은 '미기후(microclimate)'가 발달해 있다. 숲 내부에 형성된 독특한 기후 환경은 외부의 건조한 공기와 강풍의 영향을 완화시킨다.

"자연 숲은 자체적인 기후 조절 능력이 있습니다. 외부가 아무리 건조해도 숲 내부는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죠. 이것이 산불에 대한 저항력을 높입니다." 생태기상학 전문가 이현주 교수(경북대)의 말이다.

◇자연 교란의 허용, 회복력의 비밀

국립공원 관리의 핵심 철학 중 하나는 '자연 교란의 허용'이다. 태풍, 병충해, 소규모 화재 등 자연적인 교란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고 자연의 회복력에 맡기는 방식이다.

"자연 교란은 숲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숲은 더 건강해지고 다양해집니다. 모든 교란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생태계의 회복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연구원 생태보전팀 정민석 팀장의 설명이다.

특히 소규모 자연 화재는 과도한 연료 축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은 1970년대부터 '자연 화재 관리 정책'을 도입해 일정 규모 이하의 자연 발생 화재는 진화하지 않고 자연 소멸되도록 두는 방식을 채택했다.

"자연 화재는 숲의 면역 시스템과 같습니다. 작은 화재를 통해 축적된 연료를 제거함으로써 대형 화재의 위험을 줄이는 거죠." 미국 산림청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준호 박사의 말이다.

◇최소 개입의 원칙,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

국립공원의 산불 저항력은 역설적으로 '최소 개입의 원칙'에서 비롯된다. 인위적인 조림, 간벌, 낙엽 제거 등의 활동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는 관리 방식이 오히려 산불에 강한 숲을 만든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은 '보전'이 최우선 가치입니다. 경제적 가치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숲을 재단하지 않죠. 이런 접근이 결과적으로 재해에 강한 숲을 만듭니다." 국립공원공단 이사장 권영록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국립공원에서는 '숲가꾸기'라는 이름의 간벌이나 하층 식생 제거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 산림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숲가꾸기 사업과 대조적이다.

"숲가꾸기는 경제림 육성을 위한 방식으로, 생태적 관점에서는 재고가 필요합니다. 모든 나무를 똑같은 간격으로 심고, 하층 식생을 제거하는 방식은 숲의 다양성과 회복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지적이다.

◇국립공원의 교훈을 일반 산림에 적용하기

국립공원의 산불 저항력은 일반 산림 관리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전문가들은 국립공원의 관리 철학을 일부 도입해 일반 산림의 산불 저항력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모든 산림을 국립공원처럼 관리할 수는 없지만,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은 '준자연림'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수종을 도입하고, 층위 구조를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관리하는 것이죠." 산림청 산림생태복원과 이상민 과장의 제안이다.

특히 마을과 인접한 '완충지대'는 국립공원 방식의 관리가 효과적일 수 있다. 다양한 활엽수를 심고, 다층 구조를 발달시켜 자연 방화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경북 영덕군은 2019년 산불 이후 마을 주변에 '생태적 방화림'을 조성했습니다. 국립공원의 식생 구조를 모방해 다양한 활엽수를 심고 다층 구조로 관리한 결과, 올해 발생한 소규모 산불이 이 지역에서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영덕군 산림녹지과 박성민 팀장의 사례 소개다.

◇자연의 지혜를 배우는 산림 관리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인간의 과도한 개입보다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는 관리 방식이 오히려 재해에 강한 숲을 만든다는 것이다.

"자연은 수천 년간의 진화를 통해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해왔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생태철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국립공원의 사례는 '자연이 가장 좋은 스승'이라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인위적인 조림과 관리에만 의존하기보다, 자연의 지혜를 배우고 이를 산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산불 예방의 길일 것이다.

"산불 문제의 해답은 더 많은 헬기나 더 넓은 임도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숲, 다양성이 살아있는 숲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국립공원연구원 원장 박종호 박사의 말이다.

국립공원과 자연 숲이 보여주는 산불 저항력은 우리의 산림 관리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단기적인 경제적 가치나 편의성보다 장기적인 생태적 건강성과 회복력을 우선시하는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연 천이의 가치, 시간이 만드는 안정성

국립공원 숲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 천이(natural succession)'를 통해 형성된 안정성이다. 자연 천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식생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인위적인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된 천이는 그 지역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식생 구조를 만들어낸다.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소나무림이 우세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참나무류와 다양한 활엽수가 주를 이루는 혼효림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는 자연 천이의 결과로, 이런 숲이 산불에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리산국립공원 생태연구팀 이지영 박사의 설명이다.

자연 천이를 통해 형성된 숲은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 조건에 최적화되어 있어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반면 인위적으로 조성된 숲은 이런 최적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

"자연 천이는 일종의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 과정입니다.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한 식생만이 살아남아 안정적인 생태계를 형성하죠. 이런 과정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취약한 숲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생태학자 박원호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야생동물의 역할, 생태계 균형의 중요성

국립공원의 산불 저항력에는 야생동물의 역할도 중요하다. 다양한 야생동물은 낙엽과 고사목을 분해하고, 종자를 분산시키며, 식생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대형 포유류는 숲 바닥을 뒤지면서 낙엽층을 교란시켜 분해를 촉진합니다. 이는 과도한 연료 축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죠. 또한 다양한 조류는 종자 분산을 통해 식생 다양성을 높입니다." 야생동물 생태학자 김정수 박사(국립생태원)의 설명이다.

특히 곤충과 미생물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들은 고사목과 낙엽을 분해해 토양으로 환원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립공원에서는 이런 자연적인 분해 과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만, 일반 산림에서는 숲가꾸기 작업으로 이 과정이 방해받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숲은 완전한 생태계 순환이 이루어지는 숲입니다. 야생동물부터 미생물까지 모든 구성원이 제 역할을 할 때 산불에도 강한 숲이 됩니다." 생태계 서비스 연구자 이민영 박사의 말이다.

◇국립공원 관리 방식의 진화

국립공원 관리 방식도 시대에 따라 진화해왔다. 초기에는 '절대 보존'을 강조했지만, 최근에는 '적응적 관리(adaptive management)'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과거에는 모든 인위적 개입을 배제하는 '절대 보존' 개념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외래종 유입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적응적 관리'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생태계의 회복력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국립공원공단 정책연구실 김태호 실장의 설명이다.

특히 산불 관리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모든 산불을 즉시 진화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생태적 산불 관리'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이는 산불의 생태적 역할을 인정하고, 인명과 재산에 위협이 되지 않는 소규모 산불은 자연 소멸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미국 국립공원청은 이미 1970년대부터 '자연 화재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한국도 장기적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산불정책 전문가 최병철 교수(강원대)의 제안이다.

◇지역사회와의 공존, 완충지대의 중요성

국립공원의 산불 관리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지역사회와의 공존'이다. 공원 경계 지역의 주민들과 협력해 완충지대를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인 산불 예방 전략이 될 수 있다.

"국립공원 경계 지역은 '완충지대(buffer zone)'로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지역에 활엽수 비율이 높은 방화림을 조성하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산불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국립공원공단 지역협력팀 박지현 팀장의 제안이다.

미국과 호주의 국립공원은 이미 '커뮤니티 기반 산불 관리(Community-Based Fire Management)'를 도입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산불 예방과 초기 대응에 직접 참여하는 이 방식은 산불 피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주민들은 그 지역의 지형과 기후, 식생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산불 관리의 핵심입니다." 호주 국립공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김준호 박사의 말이다.

◇자연의 지혜를 일상의 산림 관리에 적용하기

국립공원의 사례는 일반 산림 관리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모든 산림을 국립공원처럼 관리할 수는 없지만, 그 핵심 원칙은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산림도 '생태적 구역화'를 통해 차별화된 관리가 필요합니다.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 마을과 인접한 지역,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 등을 구분해 각각에 맞는 관리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죠." 산림청 산림정책과 이정훈 과장의 제안이다.

특히 도시 근교림이나 생활권 주변 산림은 국립공원의 관리 방식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지역은 경제적 가치보다 생태적 가치와 재해 방지 기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울 도봉산이나 관악산 같은 도시 근교림은 이미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관리 방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산림 관리에 가깝습니다. 이런 지역은 국립공원 방식의 생태적 관리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생태학자 이현정 교수(서울시립대)의 지적이다.

◇자연의 회복력을 신뢰하는 산림 정책으로

의성 산불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자연의 회복력을 신뢰하는 산림 정책의 중요성이다. 인간의 과도한 개입보다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는 접근이 장기적으로는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숲을 만든다는 것이다.

"산림 정책의 패러다임이 '통제'에서 '공존'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의성 산불이 보여주었습니다." 환경철학자 정용재 교수(이화여대)의 말이다.

국립공원과 자연 숲이 보여주는 산불 저항력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친다. 인간의 기술과 지식에는 한계가 있으며, 때로는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입니다. 국립공원의 숲이 산불에 강한 이유는 그곳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산림 정책도 이런 자연의 지혜를 더 많이 반영할 때입니다." 국립공원연구원 원장 박종호 박사의 말로 국립공원이 주는 교훈을 정리할 수 있다.

[7부: 방화수와 수종 변화]
불길을 막는 자연의 방패, 방화수의 비밀
"소나무 대신 굴참나무를... 산불에 강한 숲으로 바꿔야"

의성 산불 현장에서 발견된 놀라운 광경이 있다. 소나무는 모두 타 사라졌지만, 그 사이에 심어진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는 검게 그을렸을 뿐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일부 수종은 천연의 방화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본보는 산불에 강한 '방화수(防火樹)'의 비밀과 이를 활용한 산림 구조 개선 방안을 심층 취재했다.

◇방화수의 과학: 불에 강한 나무들의 비밀

방화수란 화재에 대한 저항력이 특별히 높은 수종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방화수로는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단풍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이 있다. 이들은 왜 불에 강한 것일까?

"방화수의 가장 큰 특징은 높은 수분 함량입니다. 참나무류는 소나무보다 2~3배 많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불이 쉽게 번지지 못하게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팀 김지원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소나무의 수분 함량은 건조 중량 대비 약 30~40%인 반면, 굴참나무는 100~120%에 달한다. 이는 마치 물을 머금은 스펀지와 같아서, 불길이 쉽게 번지지 못하게 한다.

두 번째 특징은 두꺼운 수피(樹皮)다. 참나무류는 나이가 들수록 두껍고 거친 수피를 형성하는데, 이는 열을 차단하는 천연 방화벽 역할을 한다.

"굴참나무의 수피 두께는 성목의 경우 3~5cm에 달합니다. 이는 소나무의 1cm 내외보다 훨씬 두꺼운 것으로, 내부 조직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산림생태학자 정우석 교수(서울대)의 설명이다.

세 번째 특징은 불에 타기 쉬운 정유 성분이 적다는 점이다. 소나무는 송진과 같은 가연성 정유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불이 붙으면 쉽게 타오른다. 반면 활엽수는 이런 성분이 적어 화재에 강하다.

"소나무는 불이 붙으면 마치 기름을 뿌린 것처럼 타오릅니다. 반면 참나무류는 정유 성분이 적어 불이 붙어도 천천히 타는 특성이 있죠." 산불연구센터 이진우 연구원의 말이다.

◇의성 산불에서 살아남은 방화수들

의성 산불 현장 조사 결과, 방화수의 화재 저항력은 실제로 입증됐다. 산불이 휩쓸고 간 지역에서 소나무는 대부분 고사했지만, 참나무류와 느티나무는 상당수가 살아남았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 조사 결과, 소나무의 생존율은 10% 미만인 반면,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생존율은 60~70%에 달했습니다. 특히 성목의 경우 수피만 그을렸을 뿐 대부분 살아남았죠." 산불 피해 조사에 참여한 산림청 김동현 연구관의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화수의 '재생 능력'이다. 활엽수는 지상부가 화재로 손상되더라도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를 내는 '맹아 갱신' 능력이 있어 빠르게 회복된다.

"산불 발생 두 달 만에 타 죽은 것처럼 보이던 참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뿌리가 살아있어 맹아 갱신이 이루어진 것으로, 소나무와 달리 한번 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죠." 산림복원 전문가 최재원 박사(한국산림복원학회)의 설명이다.

금성면 주민 박영호 씨(72)는 "20년 전 마을 어르신들이 '소나무만 심으면 언젠가 큰 화재가 날 것'이라며 참나무를 심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지혜를 실감했죠"라고 회상했다.

◇방화림 조성의 과학: 전략적 배치가 핵심

방화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배치'가 중요하다. 단순히 방화수를 심는 것이 아니라, 산불 확산 경로를 고려한 '방화림(防火林)'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화림은 산불 확산을 막는 '그린 방화벽' 역할을 합니다. 특히 마을과 산림 경계, 주요 도로변, 등산로 주변에 조성하면 효과가 큽니다." 산림청 산불방지과 이정훈 과장의 설명이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주요 산림 지역에 폭 50~100m의 방화림을 조성해왔다. 방화림은 주로 참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로 구성되며, 산불이 발생했을 때 확산을 막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일본의 방화림은 단순한 나무 벨트가 아니라 다층 구조로 설계됩니다. 교목층, 아교목층, 관목층이 모두 갖춰진 '미니 생태계'라고 볼 수 있죠." 일본 교토대학 산림과학부 출신 김태호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도 방화림 조성 사례가 늘고 있다. 경북 영덕군은 2019년 대형 산불 이후 마을 주변에 100m 폭의 방화수림대를 조성했다. 그 결과 올해 발생한 소규모 산불이 마을로 번지지 않고 방화수림대에서 저절로 꺼지는 효과를 거뒀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왜 소나무를 베고 다른 나무를 심느냐'며 반대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방화수림대가 불을 막아내는 것을 보고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죠." 영덕군 산림녹지과 박성민 팀장의 말이다.

◇은행나무, 도시의 방화수

도시 지역에서는 은행나무가 뛰어난 방화수로 주목받고 있다. 은행나무는 수분 함량이 높고 불에 잘 타지 않는 특성이 있어, 화재 시 불길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은행나무는 화재 저항성이 매우 높은 수종입니다. 잎과 가지의 수분 함량이 높고, 수피가 두꺼워 불이 쉽게 번지지 않죠. 또한 낙엽이 빠르게 분해되어 지표면에 가연물이 적게 쌓이는 장점도 있습니다." 도시림 전문가 이현주 교수(경북대)의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 도쿄는 대지진 이후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주요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이는 '방화수 가로수'로서 도시 화재 시 불길 확산을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시도 최근 '도시 방재림' 개념을 도입해 주요 산림 인접 지역에 방화수를 심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도시와 산림의 경계 지역은 화재에 취약합니다. 이런 지역에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 방화수를 심어 완충지대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울시 공원녹지과 김민수 과장의 말이다.

◇수종 변화의 과제: 장기적 접근 필요

방화수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소나무 중심의 산림 구조를 다양한 수종으로 바꾸는 '수종 변화'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장기적 과제다.

"산림 구조를 바꾸는 것은 최소 30년 이상 걸리는 일입니다. 당장의 산불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숲가꾸기와 연료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수종 다양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산림청 산림보호과 정민호 과장의 설명이다.

산림청은 최근 '제7차 산림기본계획'을 수정해 활엽수 조림 비율을 기존 30%에서 50%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특히 산불 위험이 높은 동해안과 경북 내륙 지역은 활엽수 비율을 70%까지 높이는 계획이다.

"과거에는 경제성과 성장 속도를 중시해 침엽수 위주로 조림했지만, 이제는 산림의 공익적 기능과 재해 저항성을 고려한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산림청 조림정책과 박민수 과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수종 변화에는 여러 과제가 있다. 우선 활엽수는 소나무보다 성장이 느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다. 또한 기존 소나무림을 활엽수림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다.

"활엽수는 소나무보다 초기 성장이 느리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가치 있는 목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산불 예방, 생물다양성 증진, 토양 보전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산림경제학자 김태영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혼효림, 최적의 대안

전문가들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절히 섞인 '혼효림(混淆林)'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혼효림은 산불 확산 속도를 늦추고, 생태적으로도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혼효림은 소나무의 경제적 가치와 활엽수의 방화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산림 구조입니다. 특히 7:3 또는 6:4 비율로 활엽수와 침엽수를 혼합하면 산불 확산 속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산림생태복원센터 이민영 센터장의 제안이다.

혼효림은 생물다양성도 높다.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지면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가 되고, 이는 전체 생태계의 건강성을 높인다.

"단일 수종으로 구성된 숲은 마치 모노컬처 농업과 같습니다. 생산성은 높을지 모르지만, 병충해나 기후변화와 같은 위협에 매우 취약하죠. 반면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숲은 하나의 종이 피해를 입더라도 전체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산림생태학자 정우석 교수(서울대)의 설명이다.

혼효림은 산불 이후 복원 속도도 빠르다. 의성 산불 피해 지역 중 혼효림 구역은 이미 새싹이 돋아나는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소나무 단일림 지역은 완전히 타 버려 자연 복원에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활엽수는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를 내는 맹아 갱신 능력이 있어, 지상부가 타더라도 빠르게 회복됩니다. 소나무는 한번 타면 완전히 죽지만, 참나무류는 불에 타도 다시 살아나죠." 산림복원 전문가 최재원 박사(한국산림복원학회)의 설명이다.

◇기후변화 시대, 방화수의 중요성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건조한 날씨는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화수와 혼효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2100년까지 최대 5.7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산불 위험을 크게 높이는 요인이죠. 따라서 산불에 강한 산림 구조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기후변화 적응 전문가 이상민 교수(서울대)의 말이다.

특히 '기후 회복력이 높은 산림(climate-resilient forest)' 조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다양한 수종과 연령대의 나무로 구성된 산림으로, 기후변화와 산불 등 다양한 위협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미래의 산림은 단일 기능이 아닌 다기능성을 갖춰야 합니다. 탄소 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재해 방지 등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산림이 필요합니다." 산림생태학자 박원호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전통 지식의 재발견

흥미로운 점은 방화수의 가치가 현대 과학에서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산림 관리 문헌인 '산림경제'에는 이미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화재에 강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 주변에 의도적으로 참나무와 느티나무를 심어 '방화림'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산불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전통 지식이었죠." 산림역사 연구자 김영수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전통 마을의 '당산숲'은 대부분 참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활엽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마을의 안전을 위한 선조들의 지혜였다는 해석이다.

"당산숲은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마을을 화재와 강풍으로부터 보호하는 실용적 기능을 했습니다. 선조들은 이미 어떤 나무가 화재에 강한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죠." 민속학자 이지원 교수(안동대)의 말이다.

◇시민 참여, 방화수 확산의 열쇠

방화수와 혼효림 확산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와 참여가 중요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푸른 소나무 숲'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활엽수 중심의 산림 구조 전환에 저항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푸른 숲'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은 단순히 푸른 색이 아닙니다. 다양한 수종과 연령대의 나무, 풍부한 하층 식생이 어우러진 숲이 진정으로 건강한 숲입니다." 생태교육 전문가 이현정 교수(서울시립대)의 말이다.

이를 위해 산림 생태 교육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시민들이 직접 방화수 심기와 산불 예방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산림에 대한 이해와 애착을 높이는 것이다.

강원도 고성군은 '마을 방화림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들이 직접 방화수를 심고 가꾸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2019년 대형 산불 이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나무와 단풍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매년 봄 '방화수 심기 행사'를 열어 마을 주변에 방화림을 조성하고 있죠." 고성군 주민 김영호 씨(65)의 말이다.

◇방화수, 미래를 위한 투자

방화수와 혼효림 조성은 당장의 효과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지금 심는 나무는 수십 년 후의 산불을 막기 위한 것이다.

"방화수는 심는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참나무가 충분한 방화 능력을 갖추려면 최소 20~30년이 필요하죠. 그러나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입니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말이다.

산림청은 '산불 위험지도'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조림 정책을 추진 중이다.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은 활엽수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고, 마을과 인접한 지역에는 방화수림대를 의무적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단기간에 모든 산림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부터 활엽수 비율을 높여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산림정책연구원 이상민 원장의 제안이다.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산림 관리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자연의 다양성과 균형이 재난에 대한 최선의 방어책이라는 사실이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단일 수종의 숲보다,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 상태의 숲이 산불에 더 강하다는 역설적 진실을 확인한 것이다.

"자연은 수천 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왔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지혜를 배우고 자연의 회복력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생태철학자 정용재 교수(이화여대)의 말이다.

방화수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산불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자연의 방패다. 의성 산불에서 살아남은 참나무들은 우리에게 미래 산림 관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소나무의 푸른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진 건강한 숲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자 안전한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8부: 해외 사례에서 배우다]
산불과의 공존, 세계는 어떻게 대응하나
미국·일본·호주의 혁신적 산불 관리 전략에서 배우는 교훈

의성 산불 참사 이후 한국의 산불 대응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자국의 환경과 여건에 맞는 산불 관리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미국의 '처방화입', 일본의 '방화림 시스템', 호주의 '지역사회 중심 대응' 등 해외 선진 사례를 통해 한국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살펴봤다.

◇미국: '불과 싸우지 말고 관리하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산불 관리 시스템을 갖춘 국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산불 진압'에서 '산불 관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미국은 1970년대까지 모든 산불을 즉시 진압하는 '완전 진화 정책'을 고수했으나, 이로 인해 산림에 연료가 과도하게 축적되어 오히려 대형 산불의 위험이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미국 산림청은 1978년부터 '처방화입(prescribed burning)'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통제된 조건에서 의도적으로 작은 불을 놓아 지표면의 가연물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처방화입은 자연의 순환을 모방한 방식입니다. 작은 불을 통해 과도하게 쌓인 연료를 제거함으로써 대형 산불의 위험을 줄이는 거죠." 미국 산림청 화재관리국 출신 로버트 킹 박사는 "한국도 산불 위험이 낮은 계절에 제한적으로 처방화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또 다른 혁신은 '산불 위험 지도(Fire Risk Map)'의 정교화다. 미국 산림청은 지형, 식생, 기상 데이터를 결합한 고해상도 산불 위험 지도를 작성해 지역별 맞춤형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

"미국은 산불 위험 지도를 기반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합니다. 위험도가 높은 지역에는 방화림 조성과 연료 관리에 집중하고, 주민 대피 계획도 더 철저히 준비하죠." 미국 산불관리청에서 연수한 박지훈 연구원(국립산림과학원)의 설명이다.

특히 '산불 적응 커뮤니티(Fire Adapted Communities)' 프로그램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산불 위험 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산불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은 산불을 '없앨 수 있는 재해'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자연현상'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산불에 적응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둡니다." 산불정책 전문가 최병철 교수(강원대)의 말이다.

◇일본: '방화림 시스템'과 '지역 협력'

일본은 지형과 기후 조건이 한국과 유사해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다. 특히 일본의 '방화림 시스템(Fire Break Forest System)'은 효과적인 산불 확산 방지책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임야청은 1970년대부터 주요 산림 지역에 폭 50~100m의 방화림을 조성해왔다. 방화림은 주로 참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로 구성되며, 산불이 발생했을 때 확산을 막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일본의 방화림은 단순한 나무 벨트가 아니라 다층 구조로 설계됩니다. 교목층, 아교목층, 관목층이 모두 갖춰진 '미니 생태계'라고 볼 수 있죠." 일본 교토대학 산림과학부 출신 김태호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방화림의 '전략적 배치'다. 일본은 지형과 주풍향을 고려해 산불이 마을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방화림을 조성한다.

"일본 효고현의 경우, 2004년 대형 산불 이후 마을과 산림 경계에 집중적으로 방화림을 조성했습니다. 그 결과 2019년 발생한 산불이 방화림에서 확산이 저지되어 마을 피해를 막을 수 있었죠." 일본 임야청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이민영 박사의 사례 소개다.

일본의 또 다른 강점은 '지역 협력 체계'다. 일본은 '산림 자원 보호 조합'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산불 감시와 초기 대응에 직접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본은 마을마다 '산불 감시원'이 있어 건조한 계절에 순찰 활동을 합니다. 또한 연 2회 이상 주민 참여 산불 대응 훈련을 실시하죠. 이런 지역 기반 시스템이 초기 대응의 성공률을 높입니다." 일본 산림정책 연구자 박성민 박사의 말이다.

◇호주: '산불과 함께 살아가기'

호주는 세계에서 산불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오랜 기간 산불과 '공존'하는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산불 행동 계획(Bushfire Action Plan)'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호주 정부는 모든 가정이 개별적인 '산불 행동 계획'을 수립하도록 권장한다. 이 계획에는 대피 시기와 경로, 필수 소지품, 가족 간 연락 방법 등이 상세히 명시된다.

"호주는 '모든 산불을 막을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대신 주민들이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시키는 거죠." 호주 산불연구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정민석 박사의 설명이다.

호주의 또 다른 혁신은 '원주민 화입법(Aboriginal Burning)'의 현대적 적용이다. 호주 원주민들은 수천 년간 계절에 따라 작은 불을 놓아 산림을 관리해왔다. 호주 정부는 이런 전통 지식을 현대 산불 관리에 접목하고 있다.

"원주민 화입법은 생태계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을 놓아야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연료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지 알고 있죠." 호주 산불관리청 자문위원 스티븐 브래드쇼의 말이다.

또한 호주는 '산불 위험 등급 시스템'을 통해 주민들에게 명확한 행동 지침을 제공한다. 위험 등급에 따라 야외 활동 제한, 학교 휴교, 사전 대피 등의 조치가 자동으로 발동된다.

"호주의 산불 위험 등급은 단순히 정보 제공을 넘어 구체적인 행동 지침과 연결됩니다. '극단적 위험' 등급이 발령되면 취약 지역 주민들은 사전에 대피하는 것이 원칙이죠." 재난관리 전문가 이상호 교수(연세대)의 설명이다.

◇포르투갈: '비극 이후의 혁신'

포르투갈은 2017년 64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 산불 이후 산불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편한 사례로 주목받는다. 특히 '통합 산불 관리 시스템(Integrated Wildfire Management System)'의 도입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르투갈은 산불 관리를 '예방-대비-대응-복구'의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특히 예방에 전체 예산의 60% 이상을 투입하는 점이 특징이다.

"포르투갈은 산불 예방을 위해 '농촌 모자이크(Rural Mosaic)' 전략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산림을 다양한 수종과 연령대로 구성해 연속된 연료 축적을 방지하는 방식입니다." EU 산불연구소 마리아 페레이라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포르투갈은 '산불 취약 지역 재설계' 프로젝트를 통해 산불에 취약한 지역의 토지 이용 방식을 변경했다. 소나무 단일림을 혼효림으로 전환하고, 산림과 마을 사이에 농경지나 방목지를 배치해 자연 방화선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포르투갈의 사례는 산불 관리가 단순한 소방 활동이 아니라 국토 계획의 일부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산불에 강한 국토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국토계획 전문가 김정호 교수(서울시립대)의 말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

해외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통합적 접근'의 중요성이다. 산불 문제는 단순히 진화 장비를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산림 관리, 국토 계획, 지역사회 참여, 기후 변화 대응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의 산불 대책은 여전히 '진화' 중심입니다. 예산의 70% 이상이 헬기와 진화 장비에 투입되죠. 그러나 해외 사례를 보면 예방과 관리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지적이다.

특히 한국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방안으로는 ▲전략적 방화림 조성 ▲산불 위험 지도 정교화 ▲지역사회 참여 확대 ▲토지 이용 계획 재검토 등이 제시된다.

"일본의 방화림 시스템은 한국에 즉시 적용 가능한 모델입니다. 특히 산불 위험이 높은 강원도와 경북 지역의 마을 주변에 활엽수 중심의 방화림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산림청 산림보호과 정민호 과장의 제안이다.

또한 미국의 '산불 적응 커뮤니티' 개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산불 위험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성 산불 당시 많은 주민들이 대피 시기와 방법을 몰라 혼란을 겪었습니다. 호주처럼 각 가정별 '산불 행동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재난안전연구소 박지현 소장의 말이다.

◇기후변화 시대, 산불과의 공존 전략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위험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산불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재해'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자연현상'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건조한 날씨는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불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산불과 공존하는 전략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기후변화 전문가 이상민 교수(서울대)의 말이다.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는 이미 '산불과의 공존(Living with Wildfire)' 개념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이는 모든 산불을 막으려 하기보다, 산불이 발생해도 인명과 주요 시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접근법이다.

"산불과의 공존은 산불을 방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요구합니다.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미국 산불관리청 출신 제임스 윌슨 박사의 설명이다.

◇기술과 전통의 조화: 최신 기술의 활용

해외 선진국들은 최신 기술을 산불 관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 드론, 위성 데이터 등을 활용한 '스마트 산불 관리 시스템'이 그 예다.

캐나다는 '파이어스마트(FireSmart)' 시스템을 통해 AI 기반 산불 예측 모델을 운영한다. 이 시스템은 기상 데이터, 식생 상태, 지형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산불 발생 가능성과 확산 경로를 예측한다.

"캐나다의 AI 예측 모델은 산불 발생 48시간 전에 90% 이상의 정확도로 위험 지역을 예측합니다. 이를 통해 선제적인 자원 배치와 주민 대피가 가능해졌죠." 디지털 재난관리 전문가 박준호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드론을 활용한 산불 감시와 초기 진화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은 '드론 산불 감시단'을 운영해 위험 지역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산불 발생 시 초기에 소화탄을 투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드론은 인력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야간이나 험준한 지형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죠." 드론 산불 감시 시스템을 연구 중인 정해원 박사(국립산림과학원)의 말이다.

◇한국형 산불 관리 모델의 필요성

해외 사례를 무조건 도입하기보다는 한국의 지형, 기후, 산림 특성에 맞는 '한국형 산불 관리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은 산림의 70% 이상이 경사 30도 이상의 험준한 지형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봄철 강한 편서풍과 건조한 날씨라는 독특한 기후 특성이 있죠. 이런 조건에 맞는 맞춤형 전략이 필요합니다." 산림지리학자 최동원 교수(경북대)의 지적이다.

한국형 모델의 핵심 요소로는 ▲지형에 맞는 방화림 설계 ▲계곡과 능선을 활용한 자연 방화선 구축 ▲한국 기후에 적합한 방화수종 개발 등이 제시된다.

"일본의 방화림 시스템을 참고하되, 한국의 지형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계곡부와 능선부의 식생을 차별화해 자연 방화선을 강화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산림청 산림복원과 이상민 과장의 제안이다.

또한 한국 고유의 전통 지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도 필요하다. 조선시대 '송계(松契)'와 같은 마을 단위 산림 관리 시스템은 현대의 지역사회 참여형 산불 관리에 시사점을 준다.

"우리 조상들은 '송계'라는 마을 공동체 조직을 통해 산림을 관리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커뮤니티 포레스트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지역 주민이 직접 산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었죠." 산림역사 연구자 김영수 박사의 설명이다.

◇국제 협력의 중요성

산불 문제는 국경을 초월한 협력이 필요한 분야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의 규모와 빈도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산불 관리는 국제적인 지식과 경험의 공유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은 공통된 산불 위험에 직면해 있어 지역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아시아산불네트워크 의장 박종호 박사의 제안이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호주는 '국제산불관리협약(International Wildfire Management Agreement)'을 통해 산불 진화 인력과 장비를 공유하고 있다. 산불 위험이 높은 계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효율적인 자원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도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인접국과의 산불 대응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의 접경지역 산불은 남북 협력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외교안보 전문가 이정훈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의성 산불 이후, 변화의 시작점

의성 산불은 한국의 산불 관리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일깨운 사건이다. 해외 선진 사례를 참고하되, 한국의 특성에 맞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제는 장비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예방과 관리, 지역사회 참여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산림청 산불방지과 김준호 과장의 말이다.

산림청은 최근 '산불 관리 혁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해외 선진 사례를 연구하고 한국형 산불 관리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2026년까지 주요 산불 위험지역에 방화림을 조성하고, 산불 위험 지도를 고도화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산불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산림 생태계와 인간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해결책도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이어야 합니다." 재난관리 전문가 최병천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의성 산불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더 안전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성공 사례에서 배우되, 한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불과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9부: 기후위기가 아닌 정책 실패]
"기후위기 탓? 아니다, 정책 실패다"
대형 산불의 진짜 원인, 50년간 이어진 잘못된 산림 정책의 민낯

의성 산불 이후 정부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상 현상이 산불의 주요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산림 전문가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후변화는 산불의 조건일 뿐, 진짜 원인은 수십 년간 이어진 잘못된 산림 정책이라는 것이다. 본보는 대형 산불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치고, 정책 실패의 실체를 추적했다.

◇"기후위기는 방패막이 아니다"

의성 산불 당시 정부는 "기록적인 건조함과 강풍이라는 이상 기상 현상이 산불 확산의 주요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후변화를 탓하는 것은 책임 회피입니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은 산불의 '조건'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그런 조건에서도 대형 산불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산림 관리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지적이다.

실제로 같은 기상 조건에서도 산불 피해 규모는 산림 구조와 관리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의성 산불 당시 소나무 단일림 지역은 완전히 소실된 반면, 활엽수가 많은 혼효림 지역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같은 바람, 같은 건조함 속에서도 어떤 숲은 타고 어떤 숲은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림 구조와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산림생태학자 정우석 교수(서울대)의 말이다.

◇50년 전 결정이 오늘의 재앙을 만들었다

현재 한국 산림의 취약성은 1970년대 시작된 속성 녹화사업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정부는 황폐화된 산림을 빠르게 복구하기 위해 성장이 빠른 소나무를 대규모로 심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푸른 산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소나무 단일림이 가진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50년간 산림 구조를 다양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오늘날 대형 산불의 구조적 원인입니다." 산림청 출신 김영수 전 국장의 설명이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 산림의 약 42%가 소나무림이다. 특히 산불 위험이 높은 동해안과 경북 내륙 지역은 소나무 비율이 60%를 넘는다. 소나무는 송진과 수지 함량이 높아 불에 쉽게 타는 특성이 있어 '산불의 온상'으로 불린다.

"소나무 단일림은 '산불 폭탄'과 같습니다.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고, 진화가 거의 불가능한 수관화로 발전하죠. 그런데도 우리는 50년간 이런 위험한 구조를 방치했습니다." 산불연구센터 이진우 연구원의 말이다.

◇숲가꾸기 사업의 역설

산림청이 추진해온 '숲가꾸기' 사업도 비판의 대상이다. 산림 건강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이 사업이 오히려 산불 위험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숲가꾸기라는 이름으로 하층 식생을 제거하고 낙엽층을 긁어내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숲의 수분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었죠. 결과적으로 더 건조하고 산불에 취약한 숲이 만들어졌습니다." 산림생태복원 전문가 최재원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획일적인 관리'다. 지역과 수종,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방식으로 숲가꾸기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나무림과 활엽수림은 관리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또한 북사면과 남사면, 계곡부와 능선부의 특성도 다르죠. 그런데 현재는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림정책연구소 정민영 소장의 지적이다.

산림청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의 숲가꾸기가 경제림 육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산림의 생태적 건강성과 재해 저항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림청 숲가꾸기 정책과 박진호 과장의 말이다.

◇예산 배분의 왜곡

산불 관련 예산 배분의 불균형도 정책 실패의 한 측면으로 지적된다. 현재 산불 관련 예산의 70% 이상이 헬기와 진화 장비 구매 및 유지에 사용되고 있다. 반면 예방과 산림 구조 개선에는 20% 미만의 예산만 배정되어 있다.

"화재는 예방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이 난 후 끄는 데만 돈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집에 소화기만 잔뜩 사두고 화재에 취약한 구조는 그대로 두는 것과 같습니다." 재난관리 전문가 이상호 교수(연세대)의 비유다.

특히 헬기 중심의 진화 전략은 대형 산불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의성 산불 당시 60여 대의 헬기가 투입됐지만, 강풍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진화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헬기는 풍속이 초속 15m를 넘으면 비행 자체가 위험해 출동이 제한됩니다. 또한 야간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비행이 불가능하죠. 결국 가장 중요한 시기에 헬기는 전혀 활용되지 못합니다." 항공산업 전문가 김태윤 교수(한국항공대)의 설명이다.

예산 배분의 왜곡은 정치적 이유도 있다는 분석이다. "헬기 구매는 눈에 보이는 '보여주기식' 정책입니다. 반면 산림 구조 개선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선호하지 않죠."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정호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분절된 관리 체계의 한계

산불 관리 체계의 분절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산불 관련 업무는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국립공원공단 등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어 통합적인 대응이 어렵다.

"의성 산불 당시 현장에 투입된 헬기들은 각기 다른 기관 소속으로, 통합된 지휘 체계 없이 개별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는 여러 대의 헬기가 중복 투입된 반면, 정작 필요한 곳에는 헬기가 투입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죠." 재난관리 전문가 최병천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또한 산림 관리와 산불 대응이 분리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산림 관리는 산림청이, 산불 진화는 소방청이 주도하다 보니 통합적인 접근이 어렵다.

"산불 문제는 산림 관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떤 숲을 만들고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산불 발생과 확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그런데 현재는 이 두 영역이 분리되어 있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습니다." 산림정책학자 오창민 교수(서울대)의 지적이다.

◇근본적 해결책: 산림 구조의 다양화

전문가들은 대형 산불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산림 구조의 다양화'를 제시한다. 소나무 중심의 단일림을 활엽수와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활엽수는 수분 함량이 높고 불에 잘 타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소나무림 사이에 활엽수 벨트를 조성하면 산불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죠." 산림생태복원센터 이민영 센터장의 제안이다.

산림청도 최근 '제7차 산림기본계획'을 통해 소나무 단일림을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과제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산림 구조를 바꾸는 것은 최소 30년 이상 걸리는 일입니다. 당장의 산불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숲가꾸기와 연료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수종 다양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산림청 산림보호과 정민호 과장의 설명이다.

◇지역 맞춤형 산불 관리 전략

또 다른 해결책으로 '지역 맞춤형 산불 관리 전략'이 제시된다. 전국을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하기보다, 지역별 특성과 위험도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을 적용하는 것이다.

"산불 위험은 지역마다 다릅니다. 동해안과 경북 내륙은 소나무 비율이 높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위험도가 매우 높죠. 이런 지역은 집중적인 예방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팀 김지원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산불 위험 지도'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관리가 중요하다. 위험도가 높은 지역은 방화림 조성, 연료 관리, 주민 교육 등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호주는 이미 고해상도 산불 위험 지도를 기반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불정책 전문가 최병철 교수(강원대)의 제안이다.

◇지역사회 참여의 중요성

산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참여도 중요하다. 주민들이 직접 산불 예방과 초기 대응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일본은 '산림 자원 보호 조합'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산불 감시와 초기 대응에 직접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런 지역 기반 시스템이 초기 대응의 성공률을 높이는 핵심입니다." 일본 산림정책 연구자 박성민 박사의 말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주민 참여형 산불 관리가 시도되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은 '마을 산불 지킴이' 제도를 통해 주민들이 직접 산불 감시와 초기 진화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2019년 대형 산불 이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불 지킴이'를 조직했습니다. 건조한 계절에는 교대로 산림을 순찰하고, 작은 불씨도 즉시 신고하죠. 덕분에 지난 3년간 단 한 건의 산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고성군 주민 김영호 씨(65)의 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지역사회 참여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산불은 결국 지역의 문제입니다. 중앙정부의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숲을 지키는 주체가 될 때 가장 효과적인 산불 예방이 가능합니다." 지역사회 산림관리 전문가 이지원 교수(이화여대)의 말이다.

◇통합적 국토 관리의 필요성

산불 문제는 단순히 산림 정책의 문제를 넘어 국토 관리 전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산림, 농지, 도시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국토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2017년 대형 산불 이후 '산불 취약 지역 재설계' 프로젝트를 통해 산림과 마을 사이에 농경지나 방목지를 배치해 자연 방화선을 형성했습니다. 이는 산불 관리가 단순한 소방 활동이 아니라 국토 계획의 일부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국토계획 전문가 김정호 교수(서울시립대)의 설명이다.

한국도 산림과 주거지 사이의 '완충지대'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산림 인접 지역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펜션과 주택단지는 산불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성 산불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산림 바로 옆에 위치한 펜션과 주택들이었습니다. 이는 토지 이용 계획 단계에서 산불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재난안전연구소 박지현 소장의 지적이다.

◇기후변화 대응과 산불 관리의 통합

기후변화가 산불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더라도, 산불 위험을 높이는 조건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 대응과 산불 관리를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건조한 날씨는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입니다. 따라서 산림 관리 정책에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래의 기후 조건에서도 생존 가능한 수종으로 산림을 갱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후변화 적응 전문가 이상민 교수(서울대)의 제안이다.

특히 '기후 회복력이 높은 산림(climate-resilient forest)' 조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다양한 수종과 연령대의 나무로 구성된 산림으로, 기후변화와 산불 등 다양한 위협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미래의 산림은 단일 기능이 아닌 다기능성을 갖춰야 합니다. 탄소 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재해 방지 등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산림이 필요합니다." 산림생태학자 박원호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새 출발을

전문가들은 대형 산불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후변화만 탓하며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해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성 산불은 50년간 이어진 잘못된 산림 정책의 결과입니다. 이를 인정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산불로 희생된 분들과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말이다.

산림청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의 산림 정책이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질적 성장과 재해 저항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때입니다. 특히 산림 구조의 다양화와 지역 맞춤형 관리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산림청 산림정책과 이정훈 과장의 말이다.

◇장기적 관점의 정책 필요

산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림은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 없는 자원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림 정책은 최소 30년, 길게는 100년의 시간 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5년마다 바뀌는 정부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림정책학자 오창민 교수(서울대)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국가 산림 관리 기본법' 제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는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일관된 산림 관리 원칙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법적 기반이다.

"일본은 '산림·임업 기본법'을 통해 장기적인 산림 관리 원칙을 법제화했습니다. 덕분에 정권이 바뀌어도 산림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됩니다. 한국도 이런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법학자 정민호 교수(고려대)의 제안이다.

◇시민의 인식 변화도 중요

산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산림을 단순한 '녹색 자원'이 아닌 '생태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푸른 숲'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은 단순히 푸른 색이 아닙니다. 다양한 수종과 연령대의 나무, 풍부한 하층 식생이 어우러진 숲이 진정으로 건강한 숲입니다." 생태교육 전문가 이현정 교수(서울시립대)의 말이다.

이를 위해 산림 생태 교육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시민들이 직접 숲 가꾸기와 산불 예방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산림에 대한 이해와 애착을 높이는 것이다.

"독일은 '숲 유치원'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산림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또한 '시민 산림 관리자' 제도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산림 관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환경교육 전문가 김지영 교수(이화여대)의 설명이다.

◇산불과의 공존, 새로운 패러다임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산림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일깨웠다. 기후변화를 탓하며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산불은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자연현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산불이 발생해도 대형 재난으로 번지지 않도록 산림 구조와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산불과의 공존' 전략입니다." 재난관리 전문가 최병천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의성 산불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더 안전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기보다, 50년간 이어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해야 할 때다.

[10부: 지속 가능한 숲 관리로 나아가기]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숲, 산불에 강한 미래를 만든다
"통제보다 공존, 개입보다 존중"...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의 새 패러다임

의성 산불 참사는 한국 산림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9부에 걸쳐 살펴본 산불의 원인과 대책, 해외 사례와 정책 실패의 교훈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본보 특별기획 마지막 편에서는 대형 산불 재난을 막기 위한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자연의 지혜를 존중하는 산림 관리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의 핵심은 '자연의 지혜를 존중하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보다, 자연의 회복력과 적응력을 신뢰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숲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숲과 '공존'하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자연은 수천 년간의 진화를 통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생태철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근자연적 산림 관리(close-to-nature forestry)'로 불리며, 유럽에서는 이미 널리 채택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생태적 과정을 모방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산림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스위스와 슬로베니아는 이미 1950년대부터 근자연적 산림 관리를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산불과 병충해에 강한 건강한 숲을 유지하고 있죠." 국제산림연구기관 한국지부 이민영 대표의 설명이다.

◇다양성이 살아있는 숲, 회복력의 원천

지속 가능한 숲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수종,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층위 구조를 갖춘 숲은 산불을 비롯한 다양한 위협에 대한 회복력이 높다.

"단일 수종으로 구성된 숲은 마치 모노컬처 농업과 같습니다. 생산성은 높을지 모르지만, 병충해나 기후변화와 같은 위협에 매우 취약하죠. 반면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숲은 하나의 종이 피해를 입더라도 전체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산림생태학자 정우석 교수(서울대)의 설명이다.

특히 소나무 단일림을 활엽수와 혼효림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활엽수는 수분 함량이 높고 불에 잘 타지 않는 특성이 있어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

"활엽수는 '자연의 소화기'와 같습니다. 특히 참나무류는 두꺼운 수피와 높은 수분 함량으로 불길을 막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지원 박사의 말이다.

산림청은 최근 '제7차 산림기본계획'을 수정해 활엽수 조림 비율을 기존 30%에서 50%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과거에는 경제성과 성장 속도를 중시해 침엽수 위주로 조림했지만, 이제는 산림의 공익적 기능과 재해 저항성을 고려한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산림청 조림정책과 박민수 과장의 설명이다.

◇자연 천이의 존중, 시간이 만드는 안정성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의 또 다른 핵심은 '자연 천이(natural succession)'를 존중하는 것이다. 자연 천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식생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자연 천이는 일종의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 과정입니다.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한 식생만이 살아남아 안정적인 생태계를 형성하죠. 이런 과정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취약한 숲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생태학자 박원호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국립공원은 이미 자연 천이를 존중하는 관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안정적인 생태계가 형성되어 산불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소나무림이 우세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참나무류와 다양한 활엽수가 주를 이루는 혼효림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는 자연 천이의 결과로, 이런 숲이 산불에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리산국립공원 생태연구팀 이지영 박사의 설명이다.

일반 산림에도 이러한 접근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은 '자연 회복 구역(natural recovery zone)'으로 지정해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 천이를 통한 회복을 유도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생태적 구역화, 맞춤형 관리의 시작

모든 산림을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해서는 '생태적 구역화(ecological zoning)'를 통해 지역별 특성과 목적에 맞는 차별화된 관리가 필요하다.

"산림은 크게 '보전림', '방재림', '경제림'으로 구분해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은 보전림으로, 마을과 인접한 지역은 방재림으로, 목재 생산이 주목적인 지역은 경제림으로 지정하는 거죠."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제안이다.

특히 '방재림'은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에 전략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방재림은 활엽수 비율이 높고 다층 구조를 갖춘 숲으로,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일본은 주요 산림 지역에 폭 50~100m의 방화림을 조성해 산불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한국도 산불 위험이 높은 동해안과 경북 내륙 지역에 집중적으로 방화림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림청 산림보호과 정민호 과장의 말이다.

◇지역사회 참여, 지속 가능성의 열쇠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의 또 다른 핵심은 '지역사회 참여'다.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관리보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상향식 관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산림은 결국 지역의 자산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산림 관리에 직접 참여할 때 가장 지속 가능한 관리가 가능합니다." 지역사회 산림관리 전문가 이지원 교수(이화여대)의 말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 참여형 산림 관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강원도 인제군은 '마을숲 지킴이' 제도를 통해 주민들이 직접 산림 관리와 산불 감시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10년 전부터 주민들이 직접 숲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봄철에는 산불 감시, 여름에는 등산로 정비, 가을에는 낙엽 관리 등 계절별로 필요한 활동을 합니다. 덕분에 숲이 더 건강해졌고, 주민들의 애착심도 커졌죠." 인제군 마을숲 지킴이 대표 김영호 씨(65)의 말이다.

이러한 '커뮤니티 포레스트리(community forestry)'는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네팔과 인도는 지역 공동체가 직접 산림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통해 산림 황폐화를 막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실현하고 있다.

◇기술과 전통의 조화, 스마트 산림 관리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해서는 최신 기술과 전통 지식의 조화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드론, 위성 데이터 등을 활용한 '스마트 산림 관리'는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AI 기반 산불 예측 모델은 기상 데이터, 식생 상태, 지형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산불 발생 가능성과 확산 경로를 예측합니다. 이를 통해 선제적인 자원 배치와 주민 대피가 가능해집니다." 디지털 재난관리 전문가 박준호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드론을 활용한 산림 모니터링도 효과적이다. 드론은 넓은 지역을 빠르게 스캔하고, 식생 상태와 산불 위험 요소를 파악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드론은 인력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야간이나 험준한 지형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죠." 드론 산불 감시 시스템을 연구 중인 정해원 박사(국립산림과학원)의 말이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의 전통 지식과 경험도 중요한 자산이다. 조선시대 '송계(松契)'와 같은 마을 단위 산림 관리 시스템은 현대의 지역사회 참여형 산림 관리에 시사점을 준다.

"우리 조상들은 '송계'라는 마을 공동체 조직을 통해 산림을 관리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커뮤니티 포레스트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지역 주민이 직접 산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었죠." 산림역사 연구자 김영수 박사의 설명이다.

◇산림 교육과 인식 변화, 장기적 해결책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산림을 단순한 '녹색 자원'이 아닌 '생태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푸른 숲'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은 단순히 푸른 색이 아닙니다. 다양한 수종과 연령대의 나무, 풍부한 하층 식생이 어우러진 숲이 진정으로 건강한 숲입니다." 생태교육 전문가 이현정 교수(서울시립대)의 말이다.

이를 위해 산림 생태 교육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숲 유치원(Waldkindergarten)'은 어린 시절부터 숲과 교감하며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은 '숲 유치원'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산림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또한 '시민 산림 관리자' 제도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산림 관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환경교육 전문가 김지영 교수(이화여대)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숲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 숲 학교'를 운영해 시민들이 도시 숲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관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민들이 숲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직접 관리에 참여하면, 산림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공동의 생태계'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산불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시민산림센터 정미경 대표의 말이다.

◇기후변화 시대, 적응형 산림 관리

기후변화는 산림 관리에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해서는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고려한 '적응형 관리(adaptive management)'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2100년까지 최대 5.7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현재의 산림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특히 소나무와 같은 한대성 수종은 생존 범위가 줄어들고, 남부 지방의 상록활엽수는 북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후변화 적응 전문가 이상민 교수(서울대)의 설명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 회복력이 높은 산림(climate-resilient forest)' 조성이 중요하다. 이는 다양한 수종과 연령대의 나무로 구성된 산림으로, 기후변화와 산불 등 다양한 위협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미래의 산림은 단일 기능이 아닌 다기능성을 갖춰야 합니다. 탄소 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재해 방지 등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산림이 필요합니다." 산림생태학자 박원호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특히 '미래 기후에 적합한 수종 선택'이 중요하다. 현재의 기후가 아닌, 50~100년 후의 기후 조건을 고려한 조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스웨덴은 이미 '기후 적응형 조림(climate-adaptive planting)'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미래의 기후 조건에서도 생존 가능한 수종을 선택해 심는 방식입니다. 한국도 이런 장기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국제산림연구기관 한국지부 이민영 대표의 제안이다.

◇통합적 국토 관리의 필요성

산불 문제는 단순히 산림 정책의 문제를 넘어 국토 관리 전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산림, 농지, 도시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국토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2017년 대형 산불 이후 '산불 취약 지역 재설계' 프로젝트를 통해 산림과 마을 사이에 농경지나 방목지를 배치해 자연 방화선을 형성했습니다. 이는 산불 관리가 단순한 소방 활동이 아니라 국토 계획의 일부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국토계획 전문가 김정호 교수(서울시립대)의 설명이다.

한국도 산림과 주거지 사이의 '완충지대'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산림 인접 지역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펜션과 주택단지는 산불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성 산불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산림 바로 옆에 위치한 펜션과 주택들이었습니다. 이는 토지 이용 계획 단계에서 산불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재난안전연구소 박지현 소장의 지적이다.

◇장기적 비전과 일관된 정책의 중요성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해서는 장기적 비전과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산림은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 없는 자원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림 정책은 최소 30년, 길게는 100년의 시간 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5년마다 바뀌는 정부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림정책학자 오창민 교수(서울대)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국가 산림 관리 기본법' 제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는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일관된 산림 관리 원칙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법적 기반이다.

"일본은 '산림·임업 기본법'을 통해 장기적인 산림 관리 원칙을 법제화했습니다. 덕분에 정권이 바뀌어도 산림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됩니다. 한국도 이런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법학자 정민호 교수(고려대)의 제안이다.

◇산불과의 공존, 새로운 패러다임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산림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일깨웠다. 산불을 완전히 없애려는 시도보다, 산불과 공존하면서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산불은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자연현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산불이 발생해도 대형 재난으로 번지지 않도록 산림 구조와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산불과의 공존' 전략입니다." 재난관리 전문가 최병천 교수(고려대)의 말이다.

이는 '통제'에서 '적응'으로, '개입'에서 '존중'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자연의 지혜를 존중하고, 생태계의 회복력을 신뢰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입니다. 국립공원의 숲이 산불에 강한 이유는 그곳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산림 정책도 이런 자연의 지혜를 더 많이 반영할 때입니다." 국립공원연구원 원장 박종호 박사의 말이다.

◇의성 산불, 새로운 시작점이 되어야

의성 산불은 한국 산림 정책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로 나아가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고, 자연의 지혜를 존중하는 새로운 산림 관리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산불로 희생된 분들과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산림정책연구소 김태영 소장의 말이다.

산림청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의 산림 정책이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질적 성장과 재해 저항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때입니다. 특히 산림 구조의 다양화와 지역 맞춤형 관리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산림청 산림정책과 이정훈 과장의 말이다.

의성 산불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더 안전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가 필요하다. 통제보다는 공존, 개입보다는 존중의 철학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산불에 강한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칼럼] 자연의 지혜, 우리의 미래: 산불 너머의 교훈
통제가 아닌 공존, 개입이 아닌 존중으로 가는 길

의성 산불이 남긴 검은 흔적 위로 어느덧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그랬듯 스스로 회복의 길을 찾아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재난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10부에 걸친 이번 연재는 단순히 산불이라는 재난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산불은 단지 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50년간 이어진 산림 정책의 결과물이자,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소나무 단일림, 획일적 숲가꾸기, 장비 중심의 대응, 분절된 관리 체계...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였다.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진실을 마주했다. 자연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라는 것, 인간의 개입보다 자연의 지혜를 존중할 때 더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의 사례가 보여주듯, 인간의 간섭이 적을수록 오히려 산불에 강한 숲이 형성된다는 역설적 진실을 확인했다.

"문제의 해결책은 문제를 만든 사고방식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산불 문제의 해답은 더 많은 헬기나 더 넓은 임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태계의 회복력을 신뢰하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있었다.

해외 사례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미국의 '처방화입', 일본의 '방화림 시스템', 호주의 '산불 행동 계획'은 산불과 공존하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미 산불을 '없애야 할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자연현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번 연재는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산림 구조의 다양화, 생태적 구역화, 지역사회 참여, 통합적 국토 관리... 이 모든 것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이정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산림청은 활엽수 조림 비율을 높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 참여형 산림 관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푸른 소나무 숲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진 혼효림이 진정으로 건강한 숲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산림은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 없는 자원이다. 지금 심는 나무는 50년, 100년 후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 비전과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의성 산불은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그것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진정한 안전은 자연과의 조화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새로운 길을 걸어갈 것인가?

본보는 이번 연재를 통해 문제 너머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 해답은 결국 자연 속에 있었다. 다양성이 살아있는 숲,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는 관리,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보전... 이 모든 것은 산불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자원 고갈... 이 모든 위기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온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됐다. 의성 산불이 보여준 교훈은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다. 통제가 아닌 공존, 개입이 아닌 존중의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변화는 개인의 인식에서 시작된다. 우리 각자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때, 정책과 제도도 변화할 수 있다. 산책길에 만나는 다양한 나무들, 낙엽이 쌓인 숲길,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숲의 모습... 이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본보는 앞으로도 독자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의성 산불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자연의 지혜를 존중하고, 생태계의 회복력을 신뢰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건강한 숲을 만들어가는 여정에 함께해 주기 바란다.

산불 너머의 교훈은 명확하다. 우리가 자연에게서 배울 때,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 길을 따라갈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