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산불 키우기 사업'이라 불러야 할 포천의 '숲가꾸기'

2025. 3. 29. 14:19카테고리 없음

소나무만 남긴 화약고, 산림청의 위험한 자기모순


경기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길에서 목격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소나무만 군인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아래 모든 생명체는 말끔히 제거됐다. 이것이 산림청과 포천시가 자랑스럽게 '숲가꾸기'라 부르는 작업의 실체다. 그러나 이는 '숲가꾸기'가 아니라 '산불 키우기'에 가깝다.

송진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건 불을 다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송진 묻은 솔가지는 장맛비를 맞으면서도 활활 타오른다. 그런데 산림청은 이런 소나무만 빽빽하게 남기고 다른 식생은 모조리 제거하는 작업을 '산불 예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이보다 더 위험한 자기모순이 있을까?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의 '정리된' 소나무 숲은 이제 완벽한 화약고가 됐다. 불이 나면 하층 식생이라는 완충지대 없이 곧바로 소나무 수관으로 번질 것이고, 송진 가득한 소나무들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불타오를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산불이 나면 헬기 백 대를 동원해도 막을 수 없다. 의성 산불의 교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작업이 수십억 원의 혈세를 들여 진행된다는 점이다. 산림청은 매년 3,000억 원 이상을 '숲가꾸기' 사업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산불에 더 취약한 숲이다. 이는 화재 위험이 높은 건물에 소화기 대신 휘발유를 비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산림청과 포천시의 이런 행태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것일까? 산림청은 이미 2019년 강원도 대형 산불 이후 소나무 단일림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혼효림 조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소나무만 남기고 다른 식생은 모두 제거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포천시는 특히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이다. 건조한 봄철 강한 바람이 부는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한 '숲가꾸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재난 관리의 기본 원칙조차 무시하는 행태다. 포천시는 시민의 안전보다 '깔끔하게 정리된 숲'이라는 미관상 기준을 우선시하는 것인가?

산림청의 '숲가꾸기' 지침을 들여다보면 더 큰 문제가 드러난다. 지침상으로는 '생태적 건강성'을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적'과 '효율성'만 중시된다. 숲가꾸기 사업은 대부분 외부 업체에 위탁되는데, 이들은 빠르게 작업을 완료하는 데만 중점을 둔다. 그 결과 모든 숲이 획일적으로 '정리'된다. 이는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적 접근법이다.

더 통탄할 일은 이런 위험한 관행이 의성 산불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3만 3천 헥타르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고,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그 원인이 소나무 단일림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포천시와 산림청은 여전히 소나무만 남기는 '숲가꾸기'를 고집한다. 이는 재난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산림청은 최근 활엽수 조림 비율을 5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소나무 중심의 산림 관리가 계속되고 있다. 정책과 현장의 이런 괴리는 산림청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대형 산불 이후 언론 앞에서는 '혼효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소나무 단일림을 계속 만들어내는 이중적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의 '정리된' 소나무 숲은 산림 관리의 실패를 상징한다. 이는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빚어낸 결과다. 자연은 다양성과 복잡성 속에서 균형을 이룬다. 그런데 산림청과 포천시는 이런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소나무만 남긴 '인공 숲'을 만들어내고 있다.

산림청과 포천시는 이제라도 위험한 '숲가꾸기'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소나무 단일림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혼효림 조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산불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포천의 '정리된' 소나무 숲은 언젠가 의성 산불과 같은 대재앙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숲가꾸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위험한 관행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산림청과 포천시는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런 작업에 더 이상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숲가꾸기'는 자연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소나무만 남긴 화약고를 만드는 것은 '숲가꾸기'가 아니라 '재난 키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