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산불 대응의 민낯, 반복되는 '인재'의 비극

2025. 3. 30. 17:27카테고리 없음

예측 가능했던 재난, 예방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


또 다시 산불이다. 영남 지역의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가 10일째 이어지고 있다. 진화율 100%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잔불은 여전히 남아있고, 재발화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대형 산불은 결코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국내 대형산불은 네 가지 조건—3~5월 사이의 시기, 고온 건조한 남서풍, 초당 5m 이상의 바람, 침엽수림대—이 충족될 때 발생한다. 이번 경북 산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된 상태에서 불은 예상대로 부채꼴 모양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문제는 이런 명백한 패턴이 있음에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25일부터 강한 남서풍이 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산불 확산 예측도를 재난방송이나 문자메시지로 알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인재'의 시작점이다.

2019년 고성 산불에서는 1시간 만에 불티가 7.8km 날아가 천여 채의 건물이 불에 탔다. 같은 시기 강릉과 동해에서도 50분 만에 5.4km까지 불이 번졌다. 2023년 강릉 산불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대형산불은 비슷한 조건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산불 대응의 또 다른 치명적 결함은 지휘체계의 혼선이다.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산불이 둘 이상의 기초지자체에 걸쳐 발생하면 시·도지사가, 둘 이상의 광역지자체에 걸쳐 발생하면 산림청장이 통합지휘한다. 이런 행정구역 중심의 지휘체계는 자연재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관료적 발상이다.

대형산불은 행정구역의 경계를 따지지 않는다. 불은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연료가 있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지휘권을 지자체 경계로 설정하는 법률 조항이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를 지휘하지만, 민가나 도시로 확산될 경우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 소방청은 긴급구조 상황에서 지휘할 수 있지만, 산불은 '관례상' 산림청 소관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불은 계속해서 확산되고, 피해는 커진다. 일사분란한 지휘를 위한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재난 대응의 가장 큰 약점이다. 소방청장이나 제3의 기관이 산림청 등을 통합지휘할 수 있는 체계가 시급히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는 산불 진화를 위한 체계적이고 정교한 훈련도 강화해야 한다. 산불대응기관은 물론, 마을 주민들에 대한 대피 훈련이나 건축물 방어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실질적인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산림 구조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 침엽수는 발화 온도가 높고 불이 오래 타며, 바람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는 특성이 있다. '숲가꾸기'란 명목으로 침엽수림대 사이에 있는 활엽수 제거 작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침엽수림대를 활엽수림대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불은 더 이상 '자연재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줄 수 없는 '인재'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예측 가능했던 재난을 예방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은 무겁다. 산불 진화에 헌신하는 소방관과 산림공무원들의 노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시스템의 결함을 가려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산불 대응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산불 확산 예측 시스템 개선, 주민 대피 체계 강화, 통합 지휘 체계 구축, 그리고 산림 구조의 재편까지. 이 모든 것이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년 봄, 또다시 같은 뉴스를 보게 될 것이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인재'라는 단어를 되뇌게 될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의지와 행동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