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이제는 시민의 품으로"...의정부 반환공여지의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

2025. 3. 30. 18:30카테고리 없음

최경호 위원장, 철조망 너머의 약속 캠프 스탠리를 걷다


30일 오후, 녹슨 철조망 너머로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한때 미군들의 발소리와 차량 소음으로 가득했던 캠프 스탠리는 지금 적막하게 잠들어 있다. 최경호 의정부시 미군반환공여지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장이 철조망을 붙잡고 깊은 숨을 내쉰다. 그의 눈에는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고 있었다.

"여기 보이는 저 건물 뒤편에 예전에 수영장이 있었어요.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 집에 놀러 왔다가 수락산 계곡물을 막아 만든 수영장에서 놀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최 위원장의 발걸음을 따라 캠프 스탠리 외곽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한 미군기지가 아니다. 1986년 땀에 절은 옷을 입고 하루 12시간씩 기지 조성 현장에서 일했던 청년 시절의 기억, 1990년 TTC(Travel & Trip Center)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군과 군속들의 여행을 도와주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삶의 일부다.

"그때도 생각했어요. '이 좋은 땅이 언젠가 우리 시민들에게 돌아온다면 얼마나 멋질까'라고요. 그 상상이 이제 현실이 될 수 있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의정부시 고산동에 위치한 캠프 스탠리는 약 24만 평(80만㎡) 규모의 미군기지로, 반환이 확정된 경기북부 최대 규모의 미군 공여지 중 하나다. 이곳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면 의정부시는 물론 경기북부 전체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철조망 옆 작은 언덕에 올라서자 기지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최 위원장은 손짓하며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나간다.

"저기 보이는 넓은 부지는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저쪽은 청년과 예술가들이 꿈꾸는 터전으로 변모할 수 있어요. 경기북부 주민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누리는 복합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의정부시 도시재생과 김태훈 과장은 "캠프 스탠리 개발은 단순한 도시개발 사업이 아니라 의정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프로젝트"라며 "친환경적 사업과 미래지향적 기업 유치로 지역 내 총생산(GRDP)을 올리고 일자리 창출의 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철조망을 따라 걷다 보면 기지 주변으로 오래된 상가들과 주택가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박영자(68) 씨는 "미군기지가 있어 장사는 됐지만, 우리 동네가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제 우리 땅으로 돌아온다니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그동안 도시를 창의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단지 아파트 숫자 늘리기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도시의 미래를 위한 상상은 자취를 감췄고, 아이들이 자라날 꿈의 공간은 채워지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의정부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위원인 정수영 교수는 "미군기지 반환은 의정부시가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전문가들의 지혜가 결합된다면 경기북부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오후, 캠프 스탠리 정문 앞에 모인 시민들이 눈에 띈다. '미군반환공여지 시민참여위원회' 회원들이다. 이들은 매주 한 번씩 모여 기지 반환 이후의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위원회 회원 이지현(42) 씨는 "정쟁과 분열 속에 일상이 멈춰버린 지금, 코로나의 그늘보다 더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이 시기에 우리는 다시 도시를 숨 쉬게 할 힘이 필요하다"며 "미군기지 개발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되찾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철조망을 한번 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Camp Stanley를 비롯한 미군기지는 이제 더 이상 철조망 안의 공간이 아닙니다. 의정부시와 경기북부의 마지막 기회, 그리고 새로운 약속의 땅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지역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한뜻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해 질 녘,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캠프 스탠리의 철조망은 여전히 단단하게 서 있지만, 그 너머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의 모습은 이미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철조망 너머의 도시 상상력
-미군기지 반환, 아파트 공화국을 넘어 진정한 도시 재생을 꿈꾸며

도시에는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언제나 닿을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 의정부 시민들에게 캠프 스탠리는 그런 공간이었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고, 알지만 들어갈 수 없는 철조망 너머의 세계. 그 공간이 이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녹슨 철조망 앞에 서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것이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이 땅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이런 상상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 상상력은 그동안 너무 빈약했다. 아파트 단지를 짓고, 상가를 배치하고, 도로를 내는 것 이상의 꿈을 꾸지 못했다.

캠프 스탠리는 약 24만 평(80만㎡)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이 규모는 여의도 면적의 약 1/3에 해당한다. 이런 광활한 땅이 도시 한복판에 갑자기 생긴다는 것은 도시계획 측면에서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이렇게 큰 캔버스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언제나 도전과 함께 온다. 가장 큰 도전은 우리의 상상력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도시 개발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환되는 미군기지 역시 고층 아파트 단지로 채워진다면, 그것은 기회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죄악이 될 것이다.

의정부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캠프 스탠리는 단순한 미군기지가 아니다. 그곳은 수락산 계곡물로 만든 수영장에서 놀았던 추억, 땀 흘려 일했던 청년 시절의 기억, 그리고 미군과 교류했던 다양한 경험이 담긴 장소다. 이런 기억들은 도시 재생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도시 재생은 물리적 공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담긴 기억과 이야기를 살려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들을 보면, 과거의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미래지향적 비전을 담아낸 경우가 많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폐선된 고가철도를 공중정원으로 탈바꿈시켰고,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화력발전소를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변모시켰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캠프 스탠리 역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군기지로 사용되었던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지우기보다는, 그 흔적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기존 건물 중 일부는 보존하여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넓은 부지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과 커뮤니티 시설로 조성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군반환공여지 시민참여위원회'와 같은 움직임은 이런 면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도시는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다. 전문가들의 지식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 공간을 사용할 시민들의 필요와 바람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도시 재생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공간이 단순한 개발 대상이 아니라 "의정부시와 경기북부의 마지막 기회, 그리고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비전을 중시하는 관점이며, 도시 개발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캠프 스탠리의 개발은 친환경적 사업과 미래지향적 기업 유치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경제적 가치 창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또 다른 형태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진정한 성공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문화적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정쟁과 분열 속에 일상이 멈춰버린 지금, 코로나의 그늘보다 더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이 시기에 우리는 다시 도시를 숨 쉬게 할 힘이 필요하다." 이 말은 단순히 캠프 스탠리의 개발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한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상상력으로 숨 쉬는 유기체다.

철조망 너머의 공간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단순한 토지 반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다. 아파트 숫자 늘리기에 몰두하던 과거의 패러다임을 넘어, 진정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 공간을 상상할 때다.

해 질 녘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캠프 스탠리의 철조망은 여전히 단단하게 서 있다. 하지만 그 너머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의 모습은 이미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그려지고 있다. 그 상상력이 현실이 될 때, 의정부는 물론 대한민국의 도시 개발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